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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단비로 중생 욕망 씻어주리라    2006.9.27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감로(甘露)가 운반되어 옵니다. 우란분재의 대미를 장식하는 핵심, 거대한 발우에 동산처럼 가득 쌓아올려진 흰 쌀밥, 성반(盛飯)이 등장합니다(그림4). 성반이 제단에 올려지면 시식단(施食壇) 한 상차림이 완성됩니다. 누구보다도 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아귀는 좋아라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그림5·6). 범패가 들썩들썩, 대연주회 직전의 설레임입니다.(그림7)

사는 데 있어 먹는 것 만큼 시급한 문제가 있을까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보다는 ‘나는 배고프다 고로 존재한다’가 보다 더 시급한 문제. 바로 ‘밥’이 주제인 불화가 감로탱입니다. 작품 속의 성반(盛飯)은 그 위로 포진한 일곱 분 부처님(칠여래)의 막강한 원력으로,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나게 한다는 최상 최고의 맛, 바로 감로(甘露,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로 변하여 중생들의 굶주림을 채워줍니다.

감로탱의 소의경전으로는 여러 경전들이 열거되지만 그중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읽혔던 것은 <목련경>과 <우란분경>. 두 경전 다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하기위해 아들 목련이 음력 칠월 보름날, 하안거를 마친 승려를 위해 갖가지 음식과 과일을 마련하여 어머니를 그 생전의 업보로부터 구한다라는 기본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목련경>은 <우란분경>을 원본으로 하는 위경(僞經)이라고도 합니다.

‘우란분(盂蘭盆)’의 뜻에 대해서는 분분한데,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해석을 찾아본바 이렇습니다.

“산스크리트어 ‘ullambana’가 음차되어 와전된 말로 그 뜻은 ‘도현(倒懸)’이다. 인도의 풍속에 따르면 수행승의 자자일(自恣日, 안거가 끝나는 날 승려들이 마음껏 잘잘못을 말하는 날)에 성대하게 공양을 마련해 보시하는데, 이 공양을 통해 죽은 영혼을 도현(倒懸)의 고(苦)에서 구제한다. ‘도현의 고’란 즉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말한다. 선조가 죄업이 깊어 가계를 이을 자손이 끊겨, 후대에 그 고혼을 맞아 구원을 청해줄 이가 없으면 즉 아귀도에서 도현의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이에 불가에서는 제의를 마련해 삼보(三寶)의 공덕을 불러일으킨다.<현응음의(玄應音義)제13>”

‘분(盆)’을 이러한 공양을 담는 용기라고도 하나, ‘분’은 단순한 음역에 불과하다는 설도 있습니다. 즉 우란은 ‘ullam’의 음차에 해당하니, 당연 분은 ‘bana’의 음차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분’이 그 뜻대로 기명(器名)을 말한다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백미(百味)의 음식을 우란분중(盂蘭盆中)에 담아 <우란분경>”, 또는 “칠보의 분발(盆鉢)에 갖추어 부처님 및 승려에게 공양하고 <법원주림제16인용 대분정토경(大盆淨土經)>”라고 쓰여있어 그릇의 의미가 다분히 있기도 합니다. 물론 우란분은 ‘도현’의 뜻이지만, 번역되어 새로운 의미가 첨가되는 와중, 이렇게 음역과 의역 모두를 취하는 양분적인 단어로 정착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현’이라는 단어는 <목련경>(만력12년(1584, 선조17) 승가산 흥복사판)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삼보를 믿지 아니하고 인색하고 욕심내고 나쁜 업을 많이 쌓은 목련의 어머니는 그 업보로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목련이 찾아 헤매며 들여다본 여느 지옥과는 다르게, 아예 접근 불능한 커다란 아비지옥에 있었습니다. 높은 담은 만 길, 검은 벽은 만 겹, 그 위에 철망으로 덮였고, 그 위엔 네 마리의 구리로 된 개가 있어 맹렬한 불길을 토해 허공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답니다.

목련이 문을 열어달라고 청하자, 지옥주인은 ‘이 문은 생긴 후 한번도 열린 적이 없는 문’이라고 합니다. ‘죄인들이 어디로 들어오는가’라고 물으니, ‘이곳은 불효하고 오역죄를 범하고 삼보를 믿지않는 중생이 목숨이 다하게 되면 업풍이 불어 거꾸로 매달려 오는 곳(倒懸)이지 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도현이라는 단어는 워낙 죄가 무거운 자들이 받는 극한 형벌(아비지옥)을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구제하기 힘든 지옥에 빠진 영혼을 구제하려니, 스님들의 기가 가장 맑고 원력이 가장 강한 날, 그러니까 하안거가 끝나는 날(7월 15일) 스님들의 막강한 결집을 빌어 이들을 구제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나마 목련의 어머니는, 어머니를 구출하겠다는 목련의 대단한 효심이 있었기에 구제받을 수가 있었지만, 그렇지못한 영혼들은 아비지옥에 남아 이를 매우 부러워했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곤궁한 처지의 대명사로 예로부터 환과고독(鰥寡孤獨)이 꼽혔습니다. 즉 홀아비ㆍ과부ㆍ고아ㆍ무자식노인은, 고대로부터 국가의 경사 때나 또는 재난 때 가장 먼저 구휼의 대상이 되는 ‘복지정책 대상 1호’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아무도 챙겨줄 사람이 없는 지극히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자식이 없는 고통은 도현, 이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에 비유되기도 한답니다. 그러니까 우란분재는, 물론 현세의 부모와 과거 7대의 부모를 위한 제사이지만, 보다 궁극적으로는 후손에 없어 죽은 뒤에도 제사를 받을 수 없어 구천을 떠도는 고독한 영혼들을 위한 한 상 차림이 되겠습니다.

목련의 어머니 구출하기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아주 특별한 가호와 신통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아비지옥에서 소흑암지옥으로, 이 흑암지옥에서 다시 아귀도로, 아귀도에서 암캐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칠월 보름날 우란분재를 지내고야 정토로 인도될 수 있었습니다.

감로탱의 시식단 바로 밑에 가장 크게 묘사되는 아귀는 바로 굶주림과 허기의 표상입니다. 보통 아귀 도상은 심하게 부풀어오른 둥근 포대같은 배와 매우 가는 목구멍, 입에서는 불꽃을 뿜어내는 것이 특징입니다만, 본 보광사본 작품의 아귀는 건장한 장수와 같은 몸에 표정도 아주 밝습니다. 손은 합장을 했다기보다 등장하기 시작한 성반을 보고서 좋아라 입을 벌리고 손뼉을 치는 듯합니다. 고통스런 표정과 음산한 분위기의 여타 감로탱의 아귀와는 달리 유머스럽고 마냥 순진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귀의 몸통 구조를 보면 그의 운명이 짐작되시겠지요. 위장이 비대하여 게걸스런 식탐이 엄청나지만 불행히도 목구멍이 바늘만하여 음식을 삼킬 수 없는 모순된 운명. 또 아귀가 음식을 집어 삼키려하면 그것은 매번 불덩이로 변해버리고 말지요. 채워지지 않는 욕망 - 바로 목련존자의 어머니로 상징되는 아귀의 모습입니다. 이는 먹을수록 배고픈 마실수록 목마른, 바로 우리의 ‘욕망의 구조’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감로(성반)가 등장하였으니, 부처님과 스님들의 원력으로, 이제 곧 중생의 불덩이를 식힐 수 있는 감로의 법우(法雨)가 흩뿌리겠지요.

 

 

강소연 박사(홍익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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