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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감 없이 친근한 신선의 세계    2006.7.12   

 

 

장엄한 산수 속에 석가삼존인가 하여 다가가 보니 수많은 봉우리와 계곡들 속엔 오백나한으로 가득 물결칩니다. 아니 바로 산봉우리와 능선, 언덕과 계곡들이 곧 오백나한이었습니다(그림1).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은 어느새 봉황이 되고, 이 오색 금빛 봉황을 타고 유유히 비상하는 나한(그림2), 호랑이ㆍ낙타ㆍ말ㆍ흰 코끼리ㆍ사자 등 맹수를 태연히 부리며 타고 노니는 나한, 용ㆍ외각수 등 상서롭고도 기괴한 금수들을 희롱하는 나한, 발우와 석장에서 먼 하늘까지 솟구치는 빛, 구름을 타고 홀연히 날아오르는 모습. 나한은 여섯 가지 신통력(六神通)을 부리고 색탐 등의 욕망을 버리고 팔해탈법(八解脫法)을 터득한 성자라고 하는데, 과연 신선의 세계가 따로 없는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토굴 속에서의 고독한 명상, 치열한 참선 수행으로 몸은 마르고 머리와 수염으로 털북숭이가 된 모습, 토론에 열중인 총기 가득한 젊은 나한 무리,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한가히 앉은 모습, 개울가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쭈그리고 앉아 승복을 빨아 헹구는 장면, 공양 그릇을 세척하는 모습, 경전 꾸러미와 법복 옷가지를 둘러메고 수행에 들어가려는 스님 행렬, 까마귀에게 모이를 던져주며 소일하는 모습, 둘러앉아 차를 음미하며 담화를 나누는 노스님의 무리(그림4) 등 스님들의 소박하고도 친근한 일상이 같이 어우러져 펼쳐집니다.

일본 교토 지은원에 소장된 ‘오백나한도’는 길이 약 2미터(188x121.4cm)에 달하는 대작인데, 화폭에는 산수 장면과 더불어 약 2, 3센티 작은 크기의 오백나한이 깨알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산수의 음영과 굴곡, 전경 후경 등이 실상 오백나한으로 구성되어 그 효과를 내고 있음을 알고 나면 관람자들은 저절로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수 백구의 작은 부처가 화면 가득 그려진 일본 고베시립박물관 소장 ‘비로자나불도’, 보살의 천의와 화면 바탕에 여래가 빼곡히 수놓아진 히로시마 부동원 소장의 좌상 보살도 작품과 같이, 마이크로의 세계(소우주)로 마크로의 세계(대우주)를 웅변해주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물론 나한도는 천태종 및 선종의 나한신앙의 유행과 더불어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삼국에서 모두 유행하여 그 작례를 남기고 있습니다만, 오백나한을 그것도 한 폭에 이렇게 그린 것 은 본 작품이 유일한 예입니다.

‘나한(또는 아라한)’은 공양받아 마땅한 자(應供), 공양으로 복을 심는 밭(福田), 진리에 상응하는 자(應眞, 그래서 나한전을 응진전이라고도 합니다),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난 자(不生),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자(無學) 등으로도 불립니다. 나한으로는 우선 석가모니의 제자인 십대제가가 유명한데, 이들은 어디까지나 석가설법의 청중으로 불법(佛法)의 전수자로서의 성격을 띱니다. 나한이 독립적 신앙 대상으로서 숭배될 때는 주로 16나한이 채택되는데, 이러한 독립적인 나한신앙의 유행은 16나한의 이름과 주거지가 구체적으로 기입된 <법주기(法住記)>(당대 현장법사 번역)에 근거합니다. 더 나아가 나한신앙은 오백나한으로 극대화되는데, 개개의 오백나한의 존명은 명판(明版)속장경에 수록된 <남송강음군건명원나한존호비>에서 찾아볼 수 있어 일찍이 중국 남송대부터 오백나한이 조형되어 숭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나한은 석가의 정법(正法)을 전수하고 수호하는 존재로서, 그 신앙의 전파는 선종의 유행과 불가분의 관계이겠지요. 선종에서 석가는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라기보다 큰 영웅(大雄)이자 큰 스승 나의 근본 스승(是我本師)인데, 이러한 큰 스승의 입멸 후 그 가르침이 잊혀질까 하는 우려 속에 제1차 결집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때 모인 제자가 오백나한이었답니다(<오분율, 사분율>). 그런데 석가의 일체지(一切智)의 경지를 목표로 하지 않고, 즉 성불(成佛)을 궁극적 목표로 하지 않고, 단지 아라한이 되고자 아라한도(阿羅漢道) 또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목표로 하는 소승불교적 태도에 대승불교는 일침을 가합니다. <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에는 유명한 ‘계주(繫珠)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이 술 취해 잠들었을 때, 친구가 값 모르는 보석을 옷 속에 매어 준 줄도 모르고, 유랑을 떠나 살기위해 백방으로 발버둥쳐서 갖은 고생을 다 겪어, 조금이라도 얻음이 있으면 그것을 큰 기쁨으로 족하게 여기더라’ 즉 아라한과를 얻은 것을 하루 끼니 정도 얻은 소득에 불과하다고 하고,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는 불성(佛性)이란 보석은 이미 내 옷 속에 버려진 채 있었더라는 것.
그리고 이 오백제자수기품에는 운집한 오백나한이 이 아라한도(작은 멸도)에서 벗어나는 수기(授記)를 차례로 받는 희열의 광경이 바야흐로 펼쳐집니다. 또 나한과 같은 범부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섞이어 이들을 구제하는 것을 ‘방편을 쓴 보살행’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처의 방편은 보살로, 보살의 방편은 나한으로, 즉 보다 더 중생에 가까이 가려고 부처에서 보살의 모습으로, 다시 보살에서 성문의 모습으로 하화중생(下化衆生), 아래로 아래로의 교화라는 겁니다.

이같이 부처의 세계와 속세를 이어주는 ‘가교’로서의 나한의 존재는, 본 작품에서처럼 실제로 천태만상의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 그 유머러스한 친근감으로 인해 불교가 일반 민중과 더욱 친숙해지는 데 일조합니다. 나한신앙은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신선들의 모습들과도 중첩되어 그 친밀한 파급력을 더해왔습니다. 나한의 조형미술로서의 가장 큰 종교적 기능은 그 인간미 넘치는 묘사에 기인하는 거리감 없는 대중적 어필이겠지요.

< 금강경>에서 세존은 말합니다. “수보리야,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노라’ 하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실무유법(實無有法, 진실로 법이 없는 경지)을 이름하여 아라한이라 하였을 뿐입니다. 만일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노라’한다면 이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집착한 것뿐일 겁니다.”

내가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여 무아지경(無我之境), 마침내 내가 없는 순간, 아상(我相)에서 벗어나는 순간, 접신(接神)하는 순간, 내 안의 불성(佛性)과 만나는 순간, 버거웠던 세상은 별 도리 없이 무릎 아래에서 굽이칠 것입니다.
강소연(미술사학자ㆍ홍익대학 겸임교수)

그림1 日 교토 지은원소장 ‘오백나한도’의 중심 부분
그림2 봉황을 탄 나한
그림3 굶주린 아귀에게 음식을 베푸는 나한
그림4 차 마시는 나한

 

강소연 박사(홍익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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