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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로움'으로 이룬 청정한 자비    2006.5.31

 

 

밤에 뒷산에 올랐습니다. 네온사인 현란한 도시의 밤이 발치 아래로 멀어져간 이후에야 달빛의 은은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량의 소음이 아득히 사라진 뒤에야 달빛의 온화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린 듯 푸른 달은 계속 나를 따라옵니다. 그 달빛으로 숲 속 짙푸른 그림자의 환영이 만들어지고, 어느덧 ‘청정(淸淨)한 달빛 세상’ 속입니다.

고려시대를 풍미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수월(水月)’이라는 그 서정적 정취 넘치는 명칭에 걸맞는 그윽한 신비를 품고 있습니다. 고려 수월관음상은 풍만한 자태와 원만한 상호, 몸 전체를 덮어 흐르는 사라(紗羅, 극히 얇아 투명하게 비치는 비단 숄), 지극히 공교로운 영락 장식과 섬려한 천의 문양, 금니(金泥)와 녹청으로 채색된 기괴한 암석대좌 등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물론 가장 큰 특징은 관음보살 전신을 감싸는 보름달과 같이 둥근 신광(身光)입니다. 이 커다란 원광(圓光)과 더불어, 어두운 밤하늘의 배경에서 만월(滿月)이 떠오르듯, 청정하고 온화한 자비(慈悲)의 빛을 은은히 비추며 수월관음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현존하는 고려불화(약 170점 집계) 중 약 75프로의 점유율로 그 압도적인 수치를 자랑하는 하는 불화 주제는 아미타여래관련 작품(약 40%)과 수월관음도(약 35%)입니다. 단독 장르로 치자면 고려시대에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이 이 수월관음도이기에, 보통 ‘고려불화’라고 지칭할 경우 바로 이 ‘수월관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고려시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불화 장르는 그 막대한 수요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상기 언급한 회화적 특징이 정형화되어 매너리즘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을 낳기도 했습니다. 고려시대 불화의 한 특징으로도 볼 수 있는 이러한 고정된 형식을 답습하는 경향에서, 그만큼 불화의 전통적 의궤가 엄격했으며 또 고려시대의 귀족불교가 매우 보수적이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정형화되어 유존하는 수많은 수월관음도 중에는, 화폭이 4미터가 넘는 기념비적인 초대형 경신사(鏡神社)소장 수월관음도, 용왕과 용녀가 등장하는 다이내믹한 바다 풍경이 펼쳐지는 대덕사(大德寺)소장 수월관음도 등 활달한 개성 넘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월관음의 깊은 선정적 정취가 그윽하게 풍기는 작품으로는, 이 천옥박고관(泉屋博古館, 센오쿠하코우칸)소장 서구방필(徐九方筆) ‘수월관음도’(1323년, 충숙왕10년)가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는 ‘신묘(神妙)의 경지’라 칭송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독자적인 고도의 ‘장인적 공교성(工巧性)’으로 이미 당시에 국제적인 정평을 얻고 있었습니다. 원나라의 탕후(湯厚)가 저술한 ‘고금화감(古今畵鑑):외국화편’에는 “고려의 관음상은 지극히 공교롭다. 그 기원은 당(唐) 위지을승에 두고 있지만, 필치가 매우 유려하여 그 섬려함은 극에 달했다(필자 의역)”라고 명기되어, 고려 수월관음의 하이테크 화법은 중국 본토에서도 그 유명세를 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수월관음의 그 시원적 형식은 당(唐)대 수월관음도 등에서 이미 확인되고 있지만, 수월관음의 연원을 논할 때 단골로 언급되는 일련의 이들 돈황 출토 작품들은 매우 고졸한 필치이고 작품 크기 또한 현저히 작아, 상기와 같은 독자적 양식으로 정립된 ‘고려 수월관음도’와는 그 화질과 품격에 있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세밀한 철선묘로 그려진 다양하고 정교한 문양(보상화문, 국화문, 당초문, 구갑문 등)이 가득 수놓아 진 얇은 옷이 몇 겹씩 겹쳐 지극히 복잡한 구성을 이룸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문양의 충만과 중첩되어 비치는 천의 레이어에서 생기는 난해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이들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보통 고려 불화는 국제적으로도 극찬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려불화 중, 필자가 꼽고 싶은 몇몇 수작 중의 수작은(여기서 소개하는 서구방필 수월관음도를 포함해 교토 선림사 소장 아미타여래도 등) 이러한 화려한 기법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남발하지 않고 여래 또는 보살의 옷에만 집중 절제하여, 이 정치(精緻)성을 존상의 신비성을 고양시키는 요소로 일조하게끔 했다는 것입니다.

즉, ‘고도의 공교로움’과 ‘깊은 적멸(寂滅)’이 만나도록, 일명 ‘종교와 예술’이 만나는 ‘종교화’로서 힘겨운 사명을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정토교(淨土敎)적 미술의 특징과 명상적 선(禪)적 정취는 상반되는 특질로 여기기 쉽지만, 여기서는 이 양자의 극치가 서로 만나 유심정토(唯心淨土)적 청정미(淸淨美)를 신묘하게 구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바로 이러한 경지를 두고 ‘기교를 넘어선 기교(無技巧之技巧)’, ‘도가 아닌 도(道可道非常道)’, ‘행위가 없는 행위(爲亡爲)’라고 하나봅니다. ‘지극한 아름다움의 성취는 그 궁극의 종교적 상징성을 드러내게 한다’라는 디트리히 제켈(독일의 저명 불교미술사학자)의 말은 이 작품을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게라두스 반 데르 레우후는 ‘아름다움(美)이 우리를 성(聖)스러움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수월관음도를 통해 뜨거운 번뇌를 식혀주는 ‘청정한 달빛 자비(慈悲)의 세계’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러한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 즉 선재동자의 53(또는 54)선지식의 편력 중 28번째인 보타라카 산정의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과의 대면하는 장면에 그 도상학적 연원을 두고 있다고 관습적으로 말해집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요?(다음 연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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