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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이 들어주고 구제하시네!     2006.4.12

 

 

무진의보살이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觀世音)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한량없는 백 천 만억 중생이 갖은 고뇌를 받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을 모아 부른다면 관세음보살은 즉시 그 음성을 듣고 모든 고뇌에서 해탈하게 하느니라.”
<관세음보살보문품>

‘관세음보살’이란 세상의 온갖 소리(세음, 世音)를 모두 듣고(관, 觀) 계시는 보살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관(觀)이란 단순히 ‘소리를 듣는다’라는 뜻을 넘어 ‘마음으로 본다’ 또는 ‘통찰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관세음보살이란 지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모든 일들을 두루 살피고 계시는 보살님이라는 뜻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이렇게 지상의 삼라만상을 살필 뿐만 아니라, 중생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언제라도 주는 전지전능한 신(All-mighty God)으로 중생을 재난과 번뇌로부터 구하는데, 바로 자유자재로 화신해 위기에 처한 중생의 눈앞에 강림한 그 영험한 순간들을 그린 것이 바로 이 ‘관세음보살32응탱’(조선전기 1550년作)입니다.

 

 

 

 

여느 불화와는 다른 장엄한 산수 배경의 파격적이고도 대담한 구도가 범상한 솜씨가 아닙니다. 산과 계곡 사이사이에서는 구름이 피어오르고, 그 속에 숨겨진 천차만별의 인간상이 하나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독립적인 총 47장면(관음응신, 7난3독 및 게송 장면)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관음의 발치 아래에서 파노라마 칩니다.

작품 가운데에는 관음보살이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유희좌의 자세로 위풍당당하게 앉아, 이 모든 속세의 장면들을 관(觀)하고 있습니다. 관음 뒤로는 기괴한 암석과 신비스런 청색 금색의 준봉이 병풍처럼 둘렀습니다. 작품의 가장 위 하늘 공간에는 작은 여래상을 묘사해 관음을 중심으로 위로는 여래 아래로는 응화신, 즉 법(法)신ㆍ보(報)신ㆍ응(應)신의 삼신(三身)의 구조를 암시적으로 적용하였습니다.

관음의 역동적인 행동하는 ‘자비력’을 이렇게 유려하고도 창조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또 있을까요. 문자 그대로 ‘문질빈빈(文質彬彬, 형식과 내용을 모두 갖추어 광채가 나는 모양)’하여 빛이 납니다. 사상적 깊이뿐만 아니라 회화적 우수성마저 절묘하게 갖춘 이 작품은 조선전기 뿐만 아니라 한국불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관음신앙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렇게 독보적인 창조성을 보이는 작품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므로, 이 작품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백미(白眉)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본 작품은 조선왕조 제12대 왕 인종의 추모를 위해 부인 공의왕대비가 발원한 작품입니다. 주지하듯이 인종은 재위 8개월 만에 병사한 비운의 주인공.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을 사랑한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그는, 생전에 외척의 대립 속에 크고 작은 정쟁에 휘말려 끊임없는 음해사건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사후 직후에는 ‘을사사화’가 발발, 그 여파로 인종 주변 외가 및 처가 관련 약 일백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숙청 유배 및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종의 생전에서 사후까지의 모든 고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인물 인성왕비(공의왕대비)가 바로 본 작품의 발원자입니다. 인종의 사후 5년째에 감행된 이 추모불사에는 인종을 비롯해 조선전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정쟁에 희생된 많은 영혼을, 아울러 위로하려는 공의왕대비의 염원이 담겨있지 않나 추정됩니다.

화면에는 폭풍을 만나 바다에 표류하는 장면, 아득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 사형장에서 칼로 목을 내리치기 직전의 장면,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는 장면, 독약을 삼킨 장면, 호랑이를 만난 장면, 독사와 전갈과 맞닥뜨린 장면, 도적을 만난 장면, 벼락 천둥 등 자연재해를 만난 장면 등, 죽음과 위기에 직면한 상황 속의 중생들이 관음의 가피력으로 이를 무사히 다 피해가는 장면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또 중생의 근기(根氣)에 따라 32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관음보살이 몸을 나투어 제도하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론 32는, 불상(佛相)의 완전한 위덕을 상징하는 32상80종호와 같이 불존의 가시적 형상화(응신)를 말할 때 언급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숫자입니다. 이 32상에 근거한 32라는 숫자는 상징적으로 즐겨 쓰이는데, 물론 여기서의 관세음보살이 ‘32응신’으로 화현한다 라는 것은, ‘완전한 위덕으로’ 또는 ‘무량무변의 모습으로’라고 의역해도 무관할 것입니다.

< 관세음보문품>에는 ‘관세음보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상에 머무시며 중생을 제도하는가’라는 질문에, ‘어떤 국토의 중생이 마땅히 부처의 모습으로 제도가 된다면 관세음보살은 곧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위해 설법하시고, 성문의 모습으로 제도가 된다면 성문의 모습으로, 부자의 모습으로 제도가 된다면 부자의 모습으로…관리의 모습으로, 부인의 모습으로,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사람 또 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온갖 형상으로 모든 국토에 머물며 중생을 괴로움으로부터 구제한다’라는 응신묘법의 원리가 설파되어 있습니다.

부(富)를 동경하는 사람에게는 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제도하고, 수행하기를 좋아하는 지적인 정신의 소유자에게는 성문의 모습으로 나타나 제도하고,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관리로 나타나 제도합니다. 그 어떤 가치도 차별함 없이 원하는 그대로 들어줍니다.

부와 명예를 좇는 이에게 공(空)의 미학은 소귀에 경 읽기일 것이며, 또 정신적 해탈을 추구하는 철학적 성향이 강한 이에게 출세의 노하우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겠지요. 제각기 다른 중생의 수준(근기)에 맞추어 제도한다는 이 방편은 <법화경>의 화택(火宅)의 비유와도 같은 방편입니다. 불이 무엇인지 위험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진기한 장난감이 밖에 있다는 말에 유인되어 불타는 집에서 구출됩니다. 집밖에는 원하던 이상의 보물이 가득한 큰 수레가 있었다지요. 그리고 이 수레를 탄 아이들은 본래 바라던 바가 아닌 미증유(뜻밖의 희유함)를 얻었다고 합니다.

관음보살은 변화무쌍하게 우리 주변에 온갖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하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한줄기도, 마음을 밝혀주는 뒷산의 꽃 한 송이도 왠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뿐만 아니라, 우리를 괴롭힌다고 생각되는 존재들도 궁극적으로는 나를 일깨우고 자각케 해주는 "blessing in disguise(가면을 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면, 힘든 시간들도 조금은 의연히 견딜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렇게 끈기있게 계속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본다면, 아마도 보너스로 ‘뜻밖의 희유함’을 얻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강소연 박사(홍익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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