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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글쓰기

 

공경으로 사랑이룬 화엄 수호신 ‘선묘’    2006.3.15

 

“어, 어라? 아아- 경솔하여라. 저게 무슨 짓인가”
<의상도: 제3권 제1단의 화기>

정말 아차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멀어져만 가는 짙은 안개 속의 배를 바라만보고 섰던 선묘가 천길 검푸른 바다 속으로 몸을 날린 건. 예기치 않았던 돌발 상황에 하녀들이 허둥지둥 뒤쫓아 가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일렁이는 파도는 이미 그녀를 집어삼킨 듯. 그런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고 번득이는 섬광이 비치더니 선묘는 한 마리의 거대한 용으로 변했습니다. 해룡으로 변한 그녀는, 사모하는 의상법사가 탄 배를 높은 파도와 거친 폭풍으로부터 안전히 지키며 무사히 신라의 해안까지 닿게 합니다(그림2, 그림3).

일본 교토의 명승지 고산사에는 ‘화엄종조사회전(일명 화엄연기華嚴緣起)’이라는 긴 두루마리 그림(에마키繪卷)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찰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자 일본의 국보입니다. 이 에마키에는 신라시대 두 명승 의상과 원효의 전기가 그림설명(詞書)과 더불어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선묘가 바다에 투신, 용으로 변해 당나라에서 귀국하는 의상을 수호하는 이 장면은, 현존하는 총 4권의 ‘의상도’ 전기 중에 클라이맥스입니다.
 

 
 
그림1. 자신의 설레임을 고백하는 선묘. 의상은 매우 곤란해하는 눈치다.
 
 



이 작품을 제작한 묘에쇼닌(明惠上人, 1173~1232년)은, 일본 나라시대에 도다이지(동대사東大寺)를 중심으로 번창했던 화엄종을 계승하여, 카마쿠라시대 전기에 다시 한번 교토 고산사를 근거지로 화엄종을 부흥시켰던 명승입니다. 그는 신라의 원효와 의상을 화엄종의 조사로서 숭앙하였습니다. 학승으로서의 교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이들의 인품과 덕행마저 깊이 사모한 나머지, 이 두 조사의 행적을 자신의 삶의 표상으로 삼고 따랐습니다. ‘원효도’ 2권을 포함해 이 화엄연기는 총 6권인데, 그 각 권의 머리마다 “이것은 화엄종 조사에 대한 그림이다. 부정한 곳에 두고 보아서는 안 되며, 잡스런 그림 속에 섞이게 해서도 안 된다”라는 엄한 경계 문구를 써넣어 그 경건한 관리에 있어 소홀함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묘에쇼닌은 조금은 기인스러웠던 그의 행적으로 유명하여 현재까지도 대중에게 매우 친근한 승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2. 바다에 투신하는 선묘.
 
 



그중 하나는 19세부터 60세까지의 자신의 꿈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기록한 ‘몽기(夢記, 꿈의 일기)’. 이 꿈의 일기에는, 어느 날 현란한 꿈에서 깨어나 돌이켜보니 “뱀이기도 하고 돌이기도 한 것, 생각해보니 선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묘의 희생정신이 바로 화엄을 지키고 부흥시킨 기적’이라고 하고, 선묘사를 지어 화엄도량 고산사를 수호하는 권청신으로 삼습니다. 당시 일본은 막부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계급간의 마찰과 권력 쟁투가 일어납니다. 이 죠큐의 난(1221년)으로, 교토를 중심으로 한 귀족 무장들이 다수 희생되게 되는데, 묘에가 지은 선묘사는 남편을 잃은 수많은 여인들의 위안처가 됩니다. ‘비극적 운명은 오히려 기적을 낳는 힘’이라는 선묘의 교훈은 당시 여인들에게 어필하여 그 힘겨운 난세를 견디는 버팀목이 됩니다.

이 ‘의상도’의 설화는 ‘송고승전(권4)’에 수록된 ‘당신라국의상전(唐新羅國義湘傳)’에 의거한 것입니다. 당에 막 도착한 수려한 모습의 의상법사를 보고, 마을의 단아하기로 이름 높은 선묘라는 규수는 곧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그림1). 그러나 ‘나는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며 신명은 그 다음으로 했다’라는 의상의 강직한 말을 듣고 애심은 신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선묘는 의상이 중생을 이롭게 하기위해 결심한 뜻을 공경하며 돕기로 서원을 세웁니다.
 

 
 
그림3. 용으로 변한 선묘가 의상이 탄 배를 수호한다.
 
 



그 후, 의상은 지상대사의 거처에서 일승법계의 경지를 성취합니다. 장면은 바뀌어 선묘가 오매불망 의상을 그리며 정성들여 법의와 발우의 법구 상자를 마련하는 장면. 화기에는 의상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다시 한번이라도 만나볼 것을 소망하여 법구 상자를 준비하였다고 하는데, 의상이 당에 머문 기간이 십 년이므로 말하자면 그녀는 십 년을 기다렸다는 셈이 되네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짙은 안개가 앞을 가로막아 간발의 차이로 의상이 탄 배는 먼저 떠나고 맙니다.

‘대사께서 받지 않으시면 다시 누가 받으리오’라며 바다에 던진 법구 상자가 파도를 가르고 의상의 품에 가 닿는 것을 보고, 선묘는 ‘저는 내세를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바로 지금 현재의 몸으로 법사의 대원을 돕는 몸이 되게 하소서’라며 바다에 뛰어들어 용으로 변하여 배를 수호합니다. 그녀는 참으로 솔직하면서도 대담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상의 부석사 대설법 장면.
 
 



‘의상도’의 권 말미 화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재가(在家)의 애심(愛心)은 용맹한 신심(信心)을 일으켰다. 공경에 의하여 사랑을 이루었다.”

묘에쇼닌 자신도 이 ‘재가의 애심’을 심히 경계했던 일화로 유명합니다.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 반 고호만 자신의 귀를 잘랐던 것이 아닙니다. 묘에쇼닌은 자신이 여성 신자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이 교만심을 부추기고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어느 날 불모상 앞에서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버렸습니다. 다음날 그 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화엄경>을 큰 소리로 독송하니, 그 앞에 문수보살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거의 결벽증에 가까운 이런 독한 수행 결과, 그는 결국 ‘지혜의 신’을 보았던 것일까요.

의상의 무사 귀국을 도운 선묘는 이번에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너럭바위로 변해 의상이 그 화엄의 뜻을 펼 장소를 수호합니다. 일명 부석(浮石, 하늘에 뜬 돌)으로 변해 소승 잡학의 거처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니,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물러가고 그 자리에 화엄을 융성시킬 사찰을 세울 수가 있었답니다. 그리하여 사찰 이름은 ‘부석사’이고, 의상법사를 ‘부석대사’로 일컫기도 한다지요. 거대한 바윗돌로 변하는 장면과 용으로 변신하는 장면, 이 두 장면은 화엄연기 ‘의상도’의 두 절정인데, 안타깝게도 바위로 변한 장면은 유실되고 없습니다. 묘에쇼닌은 이 부석사를 흠모하여 그 곳과 비슷한 입지 조건을 찾아 암자를 짓고 참선 수행,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강소연 박사(홍익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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