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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부인 통해 아낌없는 보살행 표현    2006.2.1

 

알고 가는 이도 끊어진 이런 혼미한 길에 누구를 보려고 울면서 왔느냐. 대자비 원앙새와 공덕 닦는 내 몸이 정각(正覺)하는 날에 만나보리라
<월인석보:제244곡>

국철 노선은 아예 다니지 않고 매우 뜸한 지방 완행열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일본 시코쿠 오지의 한 책방. 힘겹게 발품 팔아 찾아온 노고를 보상 해 주려는 듯, 참으로 특이한 설화형식의 오색 선명한 조선시대 궁정불화 한 폭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루마리의 족자 그림이 펼쳐지면서, 유려한 금글씨가 눈을 사로잡습니다. 초창기 훈민정음의 설명과 함께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언문의 명문을 읽어가며 장면 장면들을 따라 가보니, 사라수대왕과 원앙왕비의 극락왕생에 대한 염원과 애절한 사연이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본 작품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안락국태자경변상도(安樂國太子經變相圖) 조선전기 1576년 일본 청산문고소장
 
 



범마라국 임정사(林淨寺)의 광유성인(光有聖人)은 승렬비구를 서천국 사라수대왕국에 보내 찻물 길어오는 시중을 들 팔궁녀(八宮女)를 청합니다→ 다음으로 사라수대왕(沙羅樹大王)을 청하게 됩니다→ 사라수대왕은 부귀영화에 얽매이지 않고 선근을 닦고 무상도를 구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구도의 길을 나섭니다→ 이때 원앙부인도 동행하게 되는데, 멀고 험한 여정 중에 심한 발병이 나고 또 만삭의 몸이라 더 이상 길을 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하여 죽림국 자현장자의 집에 계집종으로 팔아 보시케 해달라는 부인의 청대로, 그녀는 뱃속의 아기와 함께 금 4천근에 팔리게 됩니다→ 사라수왕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이름을 ‘안락국’이라 지어주고, 서로 꿈에서라도 다시 만나자라는 언약을 하고 이별합니다→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종으로서의 고생과 학대를 받는 원앙부인→ 안락국이 일곱 살 되던 즈음, 그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장자의 집에서 탈출을 시도합니다만, 그만 실패하여 얼굴에 숫돌물로 문신을 당하는 끔직한 형벌(자형)을 당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성공하여, 임정사로 향하는 힘겨운 여정이 오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와 상봉하는 아들 안락국→ 그러나 기쁨도 잠시, 원앙부인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 사라수왕은 하릴없이 아들을 귀가를 재촉합니다(글머리에 소개한「월인석보:제244곡」은 그 헤어짐을 슬퍼하여 부른 왕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다시 죽림국으로 돌아오자 소를 치는 한 목동의 노래가 아득히 들려옵니다→ 「아버지가 그리워 천리만리 찾아가더니 돌아와서는 어머니를 찾을 길 없구나, 그 신세 참으로 처량하구나, 고독한 안락국이여」→ 깜짝 놀라 (말 그대로) 보리수 밑에 가보니, 자신의 탈출로 장자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몸이 세 동강으로 베어진 어머니의 시체가 낭자하였습니다→ 안락국은 동강난 시신를 한 데 모아 이어놓고 엎드려 울며 서방을 향해 합장하니, 하늘이 진동하고 48용선이 내려와 이들을 태우고 극락세계로 향하였답니다.
 

 
 
아미타가 이끄는 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향하는 원앙부인과 안락국태자
 
 



세조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편찬한 <월인석보:권8(1459년)>에는, ‘원앙부인극락왕생연’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안락국태자경>의 내용이 31절의 가곡(월인부)과 언문주석(상절부)으로 실려 있습니다. 약 1미터 길이 화폭의 본 작품에는 제작(1576년) 당시의 한글 화기(畵記)와 함께 총 22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크기가 매우 작지만 그 표정과 몸짓들이 참으로 풍부하고 또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작품 가장 상단의 발원문에서 주상전하와 왕비전하(즉 선조와 의인왕후)와 더불어 공의왕대비·덕빈저하·혜빈정씨 등 다수의 비빈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축원이 확인되어 왕실의 왕비 및 후궁과의 밀접한 관련이 추정됩니다. 또 “사라수구탱(沙羅樹舊幀)이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희미해지고 좀먹고 마멸되어 그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이를 다시 그려 걸었다”라는 문구에서 본도보다 더 오래된 원본이 존재했었고 그것이 면면히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왕실에서 이렇게 그림으로도 그려져 사랑받았던 이 이야기는, 한글창제 후 최초의 국문불전으로 손꼽히는 <석보상절>이 편찬된 시점에서부터 아마도 왕실의 여인들에게 널리 애독되었던 당시 베스트셀러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선덕여왕 때(643년) 광유성인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임정사 창건설화(‘기림사창건연기문’과 ‘신라함월산기림사사적’)에서도 본 설화와 동일한 내용이 확인됩니다. 원효가 중창하여 기림사로 개칭한 이 사찰은, 조선전기 대대적인 사찰의 혁파가 집행될 때에도 해인사와 더불어 경상도지역에 살아남은 4대 사찰중 하나로 우리 역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사찰입니다. <안락국태자경>의 그 저본의 출처를 둘러싸고, 국어학자들 간에는 중국 출처가 아니라 우리나라 자생 설화로, 자생적 변문(變文)으로 의견이 모아져 더욱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자의 집에 종으로 팔리게 된 원앙부인과 이별하는 사라수대왕
 
 



본도에서 그려진 안락국태자전은 고대소설의 모태로서 또 서사무가의 주제로서, 국문학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사적 측면에서도 주목되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이 설화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과연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광유성인은 석가모니불이시고, 광유성인이 거느린 오백제자는 오백나한이시고, 사라수대왕은 아미타불이시고, 원앙부인은 관세음보살이시고, 안락국은 대세지보살이시고, 승렬비구는 문수보살이시고, 팔궁녀는 팔대보살이십니다.” 너무나 흥미로운 경전의 마지막 단락. 그러고 보니 작품 내용에 복선이 너무 많았군요. 바로 ‘극락(極樂)’ 그 자체를 의미하는 ‘안락국(安樂國)’, 부부 금슬이 유달리 좋다는 ‘원앙(鴛鴦)’ 등. 결국 사라수대왕과 원앙부인, 안락국태자의 정체는 ‘아미타삼존’으로 밝혀졌습니다.
 

 
 
승렬비구를 따라 범마라국 임정사로 향하는 여덞 궁녀
 
 



마치 불보살들이 중생교화를 위하여 지상에 화신하여 내려와 한 편의 연극을 벌이고 간 듯 한 느낌입니다. 사라수대왕은 속세의 정을 끊고 무상도를 위한 수행 끝에, 안락국태자는 행원을 위한 정진 끝에, 원앙부인은 아낌없는 보살행(보시) 끝에, 모두 열반에 들었습니다.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이 설화의 숨은 주인공은 바로 원앙부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앙부인은 남편과 이별할 때, 춥고 배고플 때 그것이 아물라고 왕생게(往生偈)를 지어줍니다. 이 왕생게는 남편 사라수대왕의 오래고도 고된 수행을 버티는 힘이 되고, 아들 안락국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위기에 처했을 때 기적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주문이 되고, 또 그를 아버지에게 인도하는 나침반이 되기도 합니다.

대자비를 상징하는 관음의 화신인 원앙부인의 모습에서, 남편과 자식을 위해 기꺼이 모두 희생하는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강소연 박사(홍익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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