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대중 글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염원과 사상적 깊이, 절묘한 조화    2006.1.18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의 실행으로 전례 없는 불교의 암흑기로 치부되는 조선전기.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 통념을 단숨에 깨는 한 작품이 일본 효고(兵庫)현 정토종계 사찰 십륜사(十輪寺)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장기간 중국불화로 오인돼 왔기도 하고 또 메이지시대에는 한 때 일본 국보로 지정된 바도 있었던 화려한 경력의 이 작품, <오불존도(五佛尊圖)>는 조선전기 궁정에서 발원한 왕실불화로 밝혀졌습니다. 정교한 묘사에 못지않게 도상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그 사상적 깊이 또한 매우 심오하여, 형식과 내용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작입니다.
 

 
 
오불존도. 조선전기 왕실불화로 일본 효고현 십륜사에 소장돼 있다.
 
 



작품의 가운데 세로축으로는 삼신불(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이, 가로축으로 삼불(아미타불, 노사나불, 약사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즉 종선상으로는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으로 출가신도가 궁극적인 목표로 지향해야하는 자력(自力)신앙의 구조를, 횡선상으로는 ‘아미타-노사나-약사’의 중생구제를 위한 타력(他力)신앙의 구조를 보입니다. 작품 정중앙의 노사나불은 세로선상으로는 자수용신(自受用身), 가로선상으로는 타수용신(他受用身)으로 그 양면적 의미가 주의 깊게 배치되어, 모두 오불존으로 구성되는 독특한 십자구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종선상의 삼신이 삼신귀일(三身歸一) 또는 일승(一乘)의 원리로 하나로 표현될 경우, 조선시대 조각상 및 불화에서는 주로 석가불로 표현되어 ‘아미타-석가-약사’의 삼불로 유행했습니다. 또한 많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괘불의 주인공으로는, 본 작품 정중앙에 위치한 것과 같이, 양팔을 벌려 설법인을 취한 화려한 보살형의 노사나불이 특히 유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결국 조선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불화 도상의 기본 원리가, 바로 이 오불존도에 극명히 드러나 있는 셈입니다.
 

 
 
그림1
 
 



그렇다면, 이 작품은 횡으로 위치한 삼불을 중심으로 위ㆍ아래 두개의 영역으로 나뉘게 됩니다. 윗부분은 법신 비로자나를 위시하여 녹색 두광의 금빛육신 보살들로 가득한 청정법계(淸淨法界)이고, 아랫부분은 응신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속세의 중생들로 가득한 사바세계(娑婆世界)입니다. 그런데 중생계라고해도 갖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궁녀, 비단옷과 진귀한 장신구를 두른 귀부인들로 가득한 것으로 미루어 궁정이 아닐까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에서 왕과 왕비로 보이는 인물 한 쌍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왕은 해와 달이 그려진 관을 쓰고 홀(笏)을 들고 왕비는 화려한 머리장식에 귀걸이 영락 등으로 치장하고, 나란히 예를 갖추고 합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 쌍의 왕과 왕비의 모습은 작품의 세 군데(그림 ①②③)에서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세 곳에 나타나는 왕과 왕비의 의습ㆍ장신구ㆍ지물의 동일함이 확인되어 그 형식상의 묘사에 있어 차별화하려한 의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 가장 아랫단의 왕과 왕비(그림 ①)의 산호 공양단지를 든 시녀가 윗단(그림 ③)에도 역시 동반되어 반복적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 이 세 쌍은 동일한 한 쌍임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하단의 사바세계에 있던 왕과 왕후는 점진적으로 위로 올라가, 드디어는 상단의 비로자나부처와 보살들만이 존재하는 법계(法界)의 문턱에 진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림2
 
 



이 사실을 발견하고 나면, 작품은 흥미진진한 새로운 국면을 드러내게 됩니다. 즉 극락왕생이 아니라 법계 해탈을 궁극적인 목표로 했다는 사실. 일반적으로 기원되는 궁극의 세계는 정토(淨土), 정토라 하면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고 극락정토(또는 서방정토)이겠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아미타불의 원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타력왕생을 염원한 것이 아니라, 부단한 극기와 게으르지 않은 수행과 또 일체 서원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끈기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절대 법열의 경지인 ‘청정법계(淸淨法界)’를 목표로 했다는 것입니다.

법계에의 진입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려한 이러한 대담한 작품은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는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경지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왕과 왕후는 누구이며, 이들이 법계에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한 발원자는 누구일까요? 유감스럽게도 이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되는 발원문은 바라져서 판독이 불능한 상태이고, 또 후대에 약 두 번에 걸쳐 보채를 가한 흔적이 보여 그나마 보이는 몇 자를 근거로 추론하는 것 역시 작품 오독의 우려가 다분합니다. 작품 형식 분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림3
 
 



연대가 분명한 조선전기 관련 불화(예를 들면, 일본 영평사소장 1483년명 삼제석천도) 및 유사연대의 사경화 등과 형식을 비교해본 결과, 본 작품연대는 15세기 극말에서 16세기 극초로 추정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적 정황과 당시 생존했던 또는 이미 타계한 왕 및 왕비의 생몰연대를 고려해 몇몇 가능성들을 조심스레 배제해 나가다보면, 이 불화에 그려진 젊은 왕과 왕비는 성종과 그의 첫 왕비인 공혜왕비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세종ㆍ세조가 착수한 다양한 문화사업과 국가체제를 제도적으로 완비하여 문화 창달의 왕으로도 일컬어지는 성종은 홍치 갑인(1494)년 서른아홉 한창의 나이로 세상을 뜹니다.

그럼, 이 작품을 발원한 시주자는 누구일까요? 당시 끊임없는 유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서 불사(佛事)를 계속 추진해 나갈 수 있었던 위치의 인물, 불교에 대한 깊은 학문적 조예와 신앙심으로 이러한 오불존도와 같은 작품을 위탁했을 법한 인물은,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仁粹大妃)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인수대비는 세조ㆍ예종ㆍ의경왕 등 선왕들을 위해, 또 무명 속을 헤매는 중생들을 구제하기위해 <법화경> <능엄경> <원각경> 등 경전을 일천 여 번이나의 인출한 바 있으며, 고승 학조(學祖·?~?)와 더불어 심지어 연산군 시대에까지 몇 차례에 걸쳐 수백 건의 불전언해 작업을 계속 추진하였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당시 불경언해본의 김수온(金守溫·1410~1481) 또는 고승 학조 등이 찬술한 발문에서, 법성(法性)과 보살행에 대한 인수대비의 깊은 학식과 열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상은 어디까지나 많이 고민해본 결과로서의 추론이고, 또 다른 해석의 여지는 열어두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작품에 나타난 ‘법계를 향한 열망’입니다. 법계와 이에 이르는 구도의 길이 대서사시처럼 웅변되어 있는 화엄경의 한 유명한 게송에는 ‘만일 누구든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 싶으면, 법계의 성품과 일체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으로 된 것임을 관하라’라고 역설되어 있습니다. 즉 법계의 실체는 ‘청정한 마음’이라는 것이겠지요. 이 불화는 평범하나 또 비범한 진리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올 병술년에는 끊임없이 이는 마음의 거친 파도가 고요히 가라앉아, 청정하고 영롱한 만월(滿月)을, 그 본모습 그대로 가득 비추어낼 수 있었으면 하고 기원해 봅니다.


강소연 박사(홍익대학교 겸임교수) 


  1.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6) 19세기말 감로탱 <보광사 감로탱>(하)

    법의 단비로 중생 욕망 씻어주리라 2006.9.27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감로(甘露)가 운반되어 옵니다. 우란분재의 대미를 장식하는 핵심, 거대한 발우에 동산처럼 가득 쌓아올려진 흰 쌀밥, 성반(盛飯)이 등장합니다(그림4). 성반이 제단에 올려지면 시식단(施食...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49
    Read More
  2.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5) 19세기말 감로탱 <보광사 감로탱>(상)

    참다운 진리의 기쁨 마음껏 맛보게 하리라 2006.9.13 “먹어야겠다.” 싯타르타가 6년간의 고행 끝에 깨달은 것은, ‘먹어야겠다’였습니다. 도무지 깨달음(열반)과는 점점 멀어지는 듯해서 조바심이 난 싯타르타는, 최후의 수행 방법으...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50
    Read More
  3.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4) 조선왕실발원 <석가탄생도(하)> (日 후쿠오카 혼카쿠지 소장)

    ‘…유아독존’ 중생 구제 의지 뚜렷 2006.8.23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석가모니가 처음 태어나자마자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으시...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58
    Read More
  4.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3) <석가탄생도(상)> (日 후쿠오카 본악사本岳寺 소장)

    하늘 땅 모든 상서로운 기운이 부처님 탄생 찬비 2006.8.9 저 히마반트(雪山) 기슭 예부터 코사라국에 속하는 땅에 부와 용맹을 아울러 갖춘 한 단정한 부족이 삽니다. '태양의 후예'라 일컬어지는 내가 태어난 이 부족의 이름은 사아캬(釋迦), 나는 ...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170
    Read More
  5.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2) 고려불화 <오백나한도> (日 교토 지은원소장)

    거리감 없이 친근한 신선의 세계 2006.7.12 장엄한 산수 속에 석가삼존인가 하여 다가가 보니 수많은 봉우리와 계곡들 속엔 오백나한으로 가득 물결칩니다. 아니 바로 산봉우리와 능선, 언덕과 계곡들이 곧 오백나한이었습니다(그림1).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70
    Read More
  6.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1) 조선왕실발원 <약사삼존십이신장도>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

    단단히 무장하고 중생구제 실현토록 수호 2006.6.28 높은 수미좌에 강건한 자태로 앉아 있는 약사유리광여래, 가녀린 긴 손가락을 모아 합장하는 아리따운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찬연한 금빛 육신의 이들 약사 삼존은 주색 자색 청색의 명료한 채색과 다채롭...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93
    Read More
  7.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0) 고려 <수월관음도②> (日 교토 천옥박고관泉屋博古館 소장)

    아! 봄날씨같이 포근한 님 2006.6.14 금강보석 기암좌에 걸터앉은 수월관음의 발치 아래에는, 냇물이 흐르고 진귀한 산호와 보련화가 피어오르는 연못이 있습니다. 그 좌측 끝단에는 자그마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예를 올리고 있습니...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81
    Read More
  8.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9) 고려 <수월관음도①> (日 교토 천옥박고관泉屋博古館 소장)

    '공교로움'으로 이룬 청정한 자비 2006.5.31 밤에 뒷산에 올랐습니다. 네온사인 현란한 도시의 밤이 발치 아래로 멀어져간 이후에야 달빛의 은은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량의 소음이 아득히 사라진 뒤에야 달빛의 온화한 속삭임을 들을 수 ...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79
    Read More
  9.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8) 고려시대 <관경16관변상도>(日 쿄토 지은원 소장)

    마음으로 극락세계 이루네 2006.5.17 “…안팎이 투명하게 환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로 된 땅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밑에는 금강과 칠보로 된 황금의 땅이 유리 대지를 팔방으로 받치고 있습니다. 또한 그 황금의 땅은 여덟모로 이루어지고 그 ...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79
    Read More
  10.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7) 조선왕실발원 <관세음보살32응탱> (日 교토 지은원 소장)

    차별없이 들어주고 구제하시네! 2006.4.12 무진의보살이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觀世音)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한량없는 백 천 만억 중생이 갖은 고뇌를 받을 때, 관세음보...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851
    Read More
  11.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6) 가마쿠라 시대 <화엄종조사회전-원효도> (日 교토 고산사 소장)

    지혜의 빛 밝힌 영원한 자유인 ‘원효’ 2006.3.29 “어찌 자유인을 억지로 노예로 만들려하십니까.” 남전 큰스님이 동산 양개(조동종 창시자 807~869)의 그릇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어리지만 갈고 닦아 볼 만한 재목이구나"라고 ...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161
    Read More
  12.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5) 가마쿠라 시대 <화엄종조사회전-의상회> (日 교토 고산사 소장 )

    공경으로 사랑이룬 화엄 수호신 ‘선묘’ 2006.3.15 “어, 어라? 아아- 경솔하여라. 저게 무슨 짓인가” <의상도: 제3권 제1단의 화기> 정말 아차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멀어져만 가는 짙은 안개 속의 배를 바라만보고 섰던 선묘가 천길 ...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196
    Read More
  13.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4) 조선전기<치성광여래강림도> (日 교토 고려미술관 소장)

    별자리에 담긴 불변의 진리 표현 2006.3.1 밤하늘을 마지막으로 올려다본 것이 언제였을까요? 철야로 켜져 있는 빌딩 숲의 불빛,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거리거리들. 잠들지 않는 대도시 속에 살며, 우리는 바로 머리 위에 드리운 커다란 하늘의 존재...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224
    Read More
  14.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3) 고려후기 <비로자나삼천불도> (日 고베 다나카家 소장 )

    졸고 웃고 노래하는 표정의 화엄 2006.2.15 약 6년 전 일본 고베시립박물관에서 “한국불화로 보이는 작품이 창고에서 발견됐다”라는 연락이 와서 조사를 나갔습니다. 개인소장가가 기탁한 이 작품은 일본 가마쿠라시대 작품으로 분류돼 있고 고베...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146
    Read More
  15.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 조선전기 <안락국태자경변상도> (日 청산문고 소장)

    원앙부인 통해 아낌없는 보살행 표현 2006.2.1 알고 가는 이도 끊어진 이런 혼미한 길에 누구를 보려고 울면서 왔느냐. 대자비 원앙새와 공덕 닦는 내 몸이 정각(正覺)하는 날에 만나보리라 <월인석보:제244곡> 국철 노선은 아예 다니지 않고 매우 뜸한 지방 ...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127
    Read More
  16.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 조선전기 <오불존도>속의 왕과 왕비 (日 십륜사 소장)

    염원과 사상적 깊이, 절묘한 조화 2006.1.18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의 실행으로 전례 없는 불교의 암흑기로 치부되는 조선전기.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 통념을 단숨에 깨는 한 작품이 일본 효고(兵庫)현 정토종계 사찰 십륜사(十輪寺)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장...
    Date2016.03.02 By강소연 Views55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