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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법계의 지킴이불보살 만나기 전 사천왕 검문은 '필수'    2007.9.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이 왕사성 밖 기사굴산 중에 머무시어, 큰 비구의 무리 1만 2천 명과 함께 하시고 … 성자의 무리 2천 명 … 보살의 무리 8만 명, 석제환인과 그의 권속 2만 천자, 명월천자ㆍ보향천자ㆍ보광천자ㆍ사대천왕과 그 각기 권속 1만 천자, 범천왕ㆍ시기대범ㆍ광명대범과 그 각기 권속 1만 2천 천자, 여덟 용왕의 각기 권속 약간 백천, 팔부중의 각기 권속 약간 백천, 아사세왕의 권속 약간 백천 등과 함께 하시는데, 이들은 각기 부처님 발밑에 예배드리고 물러나 한 편에 앉았다.」<법화경:서품> (필자 편집 인용)

 

석가모니가 기사굴산 즉 영산(靈山 또는 영취산)에서 바야흐로 설법을 하려 하시자, 성문ㆍ보살ㆍ사천왕ㆍ팔부중 등 각계각층의 온갖 신격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약 30만을 웃도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성중이 운집하여 그 설법의 장소는 가히 장관을 이루었다. ‘설법’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구세경(救世經)인 <법화경>의 시작 광경이다.

이러한 회중들이 모인 영산에서의 설법 장면을 묘사한 것이 <영산회상도>이다. 괘폭장(掛幅裝, 걸개그림 형식)의 작품으로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귀중한 조선전기의 영산회상도는 일본 오사카 사천왕사에 소장되어 있다.(그림1) 만력15(1587)년의 연대가 기록된 작품 화기에는 「幀大施主 高世寒兩主ㆍ供養大施主 高昭寒兩主ㆍ布施大施主 白秋水兩主」라고 16세기 당시 이 탱화를 주문한 고세한ㆍ고소한ㆍ백추수 등의 대시주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또「證明 神宗中德前雙峰住持 信翁比丘」라고 기입되어 있어, 쌍봉사와 밀접히 관련된 작품임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학계에서 ‘가가미진자(鏡神社)에 소장된 초대형 고려 수월관음도에 이은 거폭의 기념비적 조선불화’라고 평가받는 본 작품은, 일본 학자들에 의해 <석가팔대보살상>이라고 잘못 이름 붙여져 전해지고 있었다. 현재는 오사카시립미술관에 위탁 관리되고 있는데, 촬영조사 신청을 하니, 이 작품은 너무 크기 때문에 꺼내려면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하고 또 작품 조사실의 벽면에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단다.

그러던 중, 드디어 조사할 기회가 왔다. 사천왕사소장 작품전이 있어 이 그림이 전시실 대형 벽면에 곧 걸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전시 오프닝 전에 와서 조사를 하라는 특별 허가이다. 전시 준비로 분주한 전시실에 들어서니 실제로 엄청난 크기의 영산회상도(높이325.2x 너비245.5cm)가 눈앞에 떡 버티고 있다. 어떻게 촬영하나 - 멍하니 한 참 올려다보기만 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한 켠에 사다리가 눈에 띈다. 일본 학예관이 필자의 촬영을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이다. 배려가 고맙다.

두 대의 카메라와 접사렌즈ㆍ플래쉬 등 장비들을 목에 단단히 걸어 매고 또 허리에 차고,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사다리를 올랐다. 사다리에 몸을 의지해 위에서부터 찍어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가져간 슬라이드 필름 20통을 다 써도 모자랄 정도로, 그 대형 화면 촬영이 참으로 버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품의 크기도 크기이지만 이 작품을 매우 인상 깊은 작품으로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은, 화면 가장 아래에 위치한 사천왕(四天王)의 존재이다.

그 기운생동하는 표현력이 압권이다. 광목천왕의 펄럭이는 소맷자락은 소용돌이치는 바람을 품은 듯 역동하고(그림2), 몸과 다리를 휘돌아 감아 내려오는 천의는 넘쳐나는 기운으로 꿈틀거린다. 지국천왕의 푸른 얼굴은 위엄으로 가득하고 화려한 보관의 보주는 화염처럼 불타오른다.(그림4) 그가 한 금 고리 귀걸이의 쩔렁거리는 울림이 귓가에 쟁쟁하다. 각 사천왕의 개성이 물씬 풍기는 표현력에서 오대당풍(吳帶當風: 중국 당대의 화성畵聖으로 일컬어진 오도자의 화풍. 일필휘지의 유려한 필력으로, 붓을 대기만해도 갑자기 바람이 일어 그림 속 옷자락이 휘날리는 듯하다하여 이렇게 일컬어짐)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조선후기의 수많은 영산회상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천왕상 특유의 양식, 휘날리는 옷자락과 강약 리듬감 넘치는 힘찬 필법의 모델이 되는 선구적 전형(典型)을, 본 작품의 사천왕상에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국천이 들고 있는 비파는 악기 판목의 나이테 문양까지 그려 넣었고, 증장천의 모자와 옷소매의 가장사리에는 털가죽 질감이 살아있는 표범피로 둘렀다. 견갑은 격자무늬의 금속으로 견고히 엮어있고, 팔과 다리는 단단한 칠보 보석의 보호대로 둘렀다. 이러한 사천왕의 세부 표현은 지극히 사실적이고도 유려하여, 그 기운찬 생동감에 섬세한 우아함까지 더했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사방으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기운과 악귀를 물리쳐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천왕의 근본적인 의미와 역할을 알기위해서는, 그들이 주거하는 수미산 중턱 ‘사왕천(四王天)’의 위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교적 세계관은 크게 <욕계ㆍ색계ㆍ무색계>로 나뉜다. 욕계(欲界)는 욕망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이 욕계는 아래에서부터 <지옥계ㆍ아귀계ㆍ축생계ㆍ아수라계ㆍ인간계ㆍ천계(天界)>의 6도(道)의 세계로 나뉜다.

욕계의 가장 위에 있는 ‘천계’는 다시 여섯 개의 세상, <사왕천ㆍ도리천ㆍ야마천ㆍ도솔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으로 나뉘는데, 이 천계의 시작인 ‘사왕천’이 바로 사천왕이 주거하는 곳이다. 이 사왕천은 바로 아래로는 인간계, 위로는 도리천을 두고 있다. 사천왕은 이곳에 주재하며, 아래의 인간 세상을 상세히 살핀 후, 위의 도리천(또는 33천)에 있는 제석천에게 이를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니까 사천왕은 사람들이 사는 인간계와 천인들이 사는 천계의 경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속세에서 불가(佛家)의 세계인 사찰로 들어갈 때, 우리는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또는 사천왕문)을 통과해야한 한다. 천왕문 저편은 성역이고, 사천왕은 이를 지키는 지킴이인 것이다. 사천왕은 이렇게 사찰 입구, 탑신부 면석, 사리함 외함, 전각의 외벽 및 문짝 등 모든 경계에 위치하여, 그 경계 안에 있는 것을 사수한다. 본 작품의 화면에도 가장 아래 전면에 배치되어, 신도들은 그 이면의 부처와 보살을 만나기 전에 사천왕과 대면해야한다. 청정한 불법(佛法)을 세계로 진입하려면 먼저 사천왕의 검문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강소연(미술사학자ㆍ홍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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