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대중 글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일체의 대립 초월해 대자유에 들어가 보라     2007.1.24

 

 

유마거사에게 병이 났다고 합니다. 병이 났다는 것은 나와 우주와의 조화가 깨졌다는 신호. 인간은 대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스레 흘러야할 몸의 또는 정신의 운행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은 나와 자연과의, 나와 법신과의 균형이 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청정했던 자아(佛性)가 흐려져서 밸런스를 잃기 시작한 것이지요.

흔히 걸리는 감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지요. 이렇듯 무릇 모든 병의 시작은 우선 마음에서부터 온다고 합니다. 의식 또는 무의식간에 느끼는 마음의 고통이 결국 커다란 몸의 고통이 되어, 둔한 우리에게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이제는 자신을 꼼꼼히 돌아볼 때라고, 경계 경보를 보내오는 것이지요.

유마거사가 짐짓 병이 났다고 소문을 내니, 세존은 병문안 갈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쟁쟁한 세존의 제자들과 보살들이 차례차례로 ‘유마와 같이 고매한 분은 실로 감당키 어려워 문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하나같이 뺍니다. 결국 대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거동하기에 이릅니다.

‘전혀 오신 바가 없이 이렇게 오셨군요, 전혀 만난 바도 들은 바도 없이 이렇게 만나게 되었군요.’ 방장(方丈)에 들어서는 문수보살을 유마거사가 맞이하며, 드디어 ‘세기의 법담’이 시작됩니다. 방장이란 사방일장(四方一丈)의 줄임말로, 유마거사가 기거하던 방의 크기를 말하는데, 사찰의 주지스님 방을 방장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일장(一丈)은 십척(약 3.33m)을 말하니, 사방 3m 남짓의 그리 크지 않은 자그마한 이 유마의 방장에서, 불국토와 현세를 넘나드는 다양한 변재와 지적 충격을 던져주는 연이은 대담들이 펼쳐집니다.

< 유마경>은 탁한 세상 속에서 온갖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범부(유마거사)가 소위 최고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출가한 무리, 세존의 성문들과 보살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출가하지 않은 아마추어 신자인 거사가 지혜와 계율을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성문 무리에게, 생과 멸ㆍ보살행ㆍ궁극적 깨달음 등 대승불교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심오한 개념들을 알기쉽고도 평이한 언어와 흥미로운 변재의 방편으로 가르칩니다.

‘그대가 아픈 원인은 무엇이며 그 병은 언제쯤 낫습니까’라고 문수보살이 묻자, 유마는 ‘모든 중생의 아픔이 남아있는 한 제 아픔은 계속될 것’이라며 ‘중생의 아픔은 곧 보살의 아픔’이므로, ‘보살의 병은 바로 대자비심이 그 원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즉 ‘더불어 같이 아파하는 마음의 발로’가 바로 자비심ㆍ보살행의 시작이라고, 문수보살에게 거꾸로 보살의 마땅한 마음가짐을 역설합니다.

모든 형식과 사회적 체계, 지적 가식을 넘어 ‘마음’을 문제삼는, 혼탁한 세상 속의 구제하기 힘든 중생을 과감히 껴안으려 하는 대승불교의 핵심을 집어낸 이 한 장면은, 중국 남북조시대부터 석굴 및 조상비석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로 대유행을 하였고 수당대에 역시 벽화(그림1) 및 회화로, 송원대에는 주로 백묘화 등으로 묘사되어 그 유구한 전통을 자랑합니다. 일본 유마경 신앙의 시작은 성덕태자(聖德太子, 일본 아스카시대에 불교를 최초로 부흥시킨 인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에게 <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라는 주석서를 짓도록 영감을 준 사람은 그의 스승인 고구려승이었다고 합니다. 또 매년 일본 나라 흥복사에서 거행되는 법회 ‘유마회(維摩會)’의 아스카시대 유래와 백제승려 법명니(法明尼)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이미 유마경 신앙은 매우 유행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이 전통이 이어져 통일신라시대 석굴암의 입구 위 감실에도 유마와 문수가 법담하는 조각좌상(그림2)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유마는 주미를 들고 팔걸이에 비스듬이 유희좌로 앉았는데, 자태도 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두루뭉수리 표현하고 얼굴 모습도 특별날 것 없는 속인입니다.

반면 문수보살은 두광 및 신광의 광배ㆍ보관과 섬려한 천의에 영락장식을 갖추고, 반듯히 연화좌 위에 앉아 양손은 검지와 중지의 두 손가락을 세워 소위 ‘입불이법문(入不二法問)’ 수인을 하고 있습니다. 격식을 갖추지 않고 추상적으로 표현된 유마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모양새로 보면 여지없이 흐트러진 자태의 유마가 단정한 문수에게 단단히 가르침을 받는 듯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이지요.

장사하여 돈도 많이 모으고, 술과 도박도 하고, 음식과 애욕도 즐겨 속세적 권세와 향락의 지저분한 냄새를 가득 묻힌 유마가, 위엄과 향기 풍기는 보살 및 성문의 프로 집단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이미 그 경지에 갔다 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겪었기에, 절절히 고민하여 체험하였기에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역시 득도하리라는 5년간의 처절한 노력 끝에, 그 집착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는 해탈을 맛 본 것이겠지요.

< 유마경>은 위대한 부처 또는 성자가 경전의 주인공이 아니라 한갓 속세인인 거사가 경을 설하는 주체라는 설정 자체가 참으로 파격적입니다. <반야심경>과 더불어 공(空) 사상을 설한 가장 초창기 대승경전에 벌써 교단적 전통과 형식주의를 단숨에 뛰어넘어버리는 이러한 대담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 유마경>은 중국 남북조시대(439-589년)에 죽림칠현(竹林七賢) 등 특히 남조의 사대부 지식층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특히 당시 진흙탕과 같은 시대상에 반하여 더욱 호응을 컸으리라 짐작됩니다.

유명 불교학자 카마타 시게오씨는 ‘공 사상 즉 불이(不二)의 경지에 들어간다’라는 것은, ‘일체의 대립을 초월한 무대립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대립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 자유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을 위해, 가족을 위해, 순간 비굴해지고 약해지는 모순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어쩔 수 없이 구차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길들여지고 있는 우리에게도 성불(成佛)의 길은 있다고 유마거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돈, 명예, 지위, 애욕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구속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자유의 경지를 유마거사는 보여줍니다. 유마(또는 유마힐)란 원어 비말라키르티(Vimalakirti)의 음역입니다. 그 뜻으로 풀이하면 정명(淨名 또는 無垢稱)으로 ‘청정함을 일컬음’ 즉 ‘청정한 이’라는 뜻입니다. 마치 그의 이름처럼 그는, 흙탕물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번뇌가 들끓는 속세에서도 청정한 자성(自性)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불이(不二)의 실천적 수행을 몸소 보여줍니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프란츠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지요.

‘진정한 길은 공중 드높은 어딘가로 나 있는 것이 아니라, 땅 바닥에 바싹 밀착해 나있고 오히려 수없이 걸려 넘어지게끔 되어 있다’


  1.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32) 사천왕상(하): 조선전기 <영산회상도> (日 오사카 사천왕사 소장)

    설법 · 가람 · 나라 지키는 위풍당당 수호신 2007. 9.5 “당나라 군사들이 수없이 우리나라 국경에 이르러 바다 위를 순회하고 있습니다”라고 정주고을 사람이 달려와 급히 아뢰었다. “일이 이미 절박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92
    Read More
  2.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31) 사천왕상(상): 조선전기 <영산회상도> (日 오사카 사천왕사 소장)

    청정 법계의 지킴이: 불보살 만나기 전 사천왕 검문은 '필수' 2007.9.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이 왕사성 밖 기사굴산 중에 머무시어, 큰 비구의 무리 1만 2천 명과 함께 하시고 … 성자의 무리 2천 명 … 보살의 무리 8...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97
    Read More
  3.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30) 창작성 돋보이는 근대 <칠성탱화> (서울 종로구)

    흰 소, 천도복숭아, 壽福 글자 ... 불교장생의 유토피아 2007.8.1 시끌벅적한 동대문을 지나 서울성곽을 바로 등진 곳에 안양암이라는 사찰이 있다. 대웅전에서 명부전ㆍ천오백불전ㆍ염불당ㆍ영각 그리고 암벽 조각된 마애보살상까지, 그리 크지 않은 경내의 ...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140
    Read More
  4.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9) 조선후기 <칠성탱화> (전남 대흥사 소장)

    "해와 달 · 별이 인간과 자연의 생멸을 관장한다" 2007.7.4 중국 옛 고사에는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의 두 신선이 수명이 19살밖에 되지 않는 한 소년의 수명을 99살로 늘려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바둑을 두던 두 신선은 소년에게 술상을 대접받고 그 답...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81
    Read More
  5.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8) 조선전기 <칠성탱화> (日 애지현 보주원 소장)

    칠성신앙 불교로 포용되어 '칠성여래'로 탄생 2007.6.20 아이를 점지해 주고 또 무병장수케 해주는 칠성님이 부처님으로, 즉 칠성여래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전국의 거의 모든 사찰 한 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칠성각에 모셔진 칠성여...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56
    Read More
  6.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7) 지옥세계(하): <지장보살본원경변상도> (日 교토 지은원소장)

    조건없는 사랑만이 지옥에서 해방2007.5.2 휘영청 푸른 달과 그 주변을 가득 수놓은 금강석 별들이 영롱히 비치는 해인삼매(海印三昧)의 바다가 아니라, 분노로 활활 끓어오르는 불바다이다/ 보드라운 숨결과도 같은 금은(金銀) 모래사장이 아니라, 날카로운 ...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76
    Read More
  7.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6) 지옥세계(상): 청룡사 명부전 시왕탱 <제5염라대왕도>

    지금 하는 모든 일이 업경대에 녹화되고 있다 2007.4.18 …인간 백년 다 살아도 병든 날과 잠든 날과/ 근심걱정 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 사나니/ 어제 오늘 성턴 몸이 저녁낮에 병이 들어/ 섬섬하고 약한 몸에 태산같은 병이 들어/ 부르나니 어머니요 ...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65
    Read More
  8.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5) <육도윤회승침도> 해인사 명부전 시왕도

    망망한 업의 바다 건너 성불하는 그날까지 2007.4.4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 태풍이 인다’라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어떤 미묘한 변화가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에 상상도 못할 엄청난 결...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44
    Read More
  9.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4) 고려불화 <지장보살도> (미국 소미소니언 프리어갤러리 소장)

    천상과 지옥 넘나들며 중생구제의 빛 비추네 2007.3.14 ‘그 때 커다란 향구름과 꽃구름ㆍ아름답고 오묘한 보배장식 구름ㆍ곱고 깨끗한 의복 구름이 몰려와 커다란 향비ㆍ꽃비ㆍ보배장식비ㆍ의복비를 내려 온 대지를 적십니다. 그러자 온갖 백천의 미묘...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72
    Read More
  10.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3) 고려불화 <아미타여래도> (日 교토 선림사 소장)

    극락정토의 아름다움, 한 몸에 품다 2007.2.28 달님이시여 서방까지 가셔서 무량수불전에 일러 사뢰소서 서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두 손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워하는 이가 있다고 사뢰소서 아아, 이 몸 남겨 두고 사십팔 대원 이루실까 <삼국유사 권...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294
    Read More
  11.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2) 근원으로 돌아가라 <반본환원> 송광사 심우도 벽화

    근원으로 돌아가라 2007.2.14 계획없이 찾아간 전남 조계산 송광사. 승보전에 그려진 심우도 벽화를 따라 한발 한발 옮겨가다가 멈추어 서게 된 것은 ‘반본환원(返本還源, 근본으로 돌아가라)’의 장면이었습니다.(그림1) 返本還源已費功 근원으로...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49
    Read More
  12.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1)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법담>(하) (中 돈황벽화)

    일체의 대립 초월해 대자유에 들어가 보라 2007.1.24 유마거사에게 병이 났다고 합니다. 병이 났다는 것은 나와 우주와의 조화가 깨졌다는 신호. 인간은 대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스레 흘러야할 몸의 또는 정신의 운행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은 나와 자연과의, ...
    Date2016.03.04 By강소연 Views42
    Read More
  13.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20) <유마거사상>(상) (日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분별 떨쳐낸 순간 꽃은 그냥 꽃일 뿐 2007.1.10 ‘그때 아리따운 천녀 하나가 유마의 방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그림1). 그녀는 곧 대보살들과 대 제자들의 머리 위로 아름다운 꽃비를 내려습니다(그림2). 보살들의 몸에 내린 꽃잎들은 아래로 흘러 떨어...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54
    Read More
  14.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9) <일심삼관문탱(一心三關門幀)> (심우사 소장)

    어머니! 당신이 없으면 이 세상도 없습니다 2006.12.13 ‘가령 어떤 사람이 그 왼쪽 어깨에는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는 어머니를 업고, 살가죽이 닳아 뼈에 이르고 또 뼈가 닳아 골수에 이르기까지 수미산을 백 천 번 돌더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는 다 ...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48
    Read More
  15.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8) 조선후기 화엄탱/팔상탱 속의 노사나불: 설법인 보살형노사나불의 출현(하)

    귀족불교에서 민중불교로 가는 전환기 반영 2006.11.8 자비로운 행동(菩薩行)으로 이 험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莊嚴), 쉽게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갖가지 꽃(華)으로 장엄(莊嚴)한다’라는 <화엄경(華嚴經)>의 의미입니다. 어렵게 말하자...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69
    Read More
  16. No Image

    【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17) 조선후기괘불 공주 신원사 <노사나불도>: 설법인 보살형노사나불의 출현(상)

    "법을 설하리" 큰 수레 굴리는 경이적 순간 2006.10.25 “고생 끝에 겨우겨우 얻은 이것을 어이 또 남들에게 설해야 되랴…”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뒤에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정각(正覺, 깨달음)을 통해 힘겹게 얻게 된 이...
    Date2016.03.03 By강소연 Views4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