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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불교에서 민중불교로 가는 전환기 반영    2006.11.8

 

자비로운 행동(菩薩行)으로 이 험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莊嚴), 쉽게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갖가지 꽃(華)으로 장엄(莊嚴)한다’라는 <화엄경(華嚴經)>의 의미입니다. 어렵게 말하자면, ‘불성(佛性) 또는 해인삼매(海印三昧)를 증득한 법신(法身)의 과보를 장엄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나 자신의 이득만을 위한 강팍하고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남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자애로운 마음을 내어 주변을 부드럽고 따듯하게 하는 것,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엄 행위라면, ‘보살행’이란 그리 심오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을 듯합니다.

태양빛이 우주를 가득 비추어 밝히고 만물을 성장케하듯, 부처님의 신묘한 작용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여 중생의 갖가지 요구에 응답해 자유자재롭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화엄삼매’라고 합니다. 즉 ‘태양’ 그 자체가 법신(法身, 해인삼매의 경지)이라면 ‘빛’은 보신(報身, 화엄삼매의 작용)입니다. 누군가에게 넉넉하고도 자비로운 마음을 받을 때는 마치 따사로운 햇살 속에 있는 듯 하지요. 내가 받은 햇살로 나는 또 다른 이를 비추겠고, 다른 이는 이 햇살을 받아 또 다른 이를 비추어 세상을 따듯하게 하겠지요.

< 화엄경> 내용을 구성하는 경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또 유일하게 산스크리트본이 남아있는 두 경전이 ‘십지품’과 ‘입법계품’입니다. 십지품은 ‘보살 수행의 열가지 단계적 경지’를 말한 것이고,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보살행과 보살도를 닦는 방법을 구하는 여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즉 ‘보살행’의 단계와 수행방법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화엄경>에는 ‘노사나보살’(불소상광명공덕품) 또는 ‘비로자나장보살’(입법계품)이라는 구체적인 명호가 보이기도 합니다만, 굳이 이러한 명칭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화엄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사상이 ‘불성이라는 진리, 그 자체에 대한 설명’과 ‘이에 도달하기 위한, 또는 이를 장엄하기 위한 보살행’이라는 것을 숙지한다면, 그 조형적 표현으로서 ‘설법인 보살형 노사나불’에 대한 이해는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합니다.

< 화엄경>은 경전 속에 설해진 설법의 장소와 횟수를 중심으로, 전체 80권이 총 7처9회로 나뉘어 설명됩니다. 바로 이 7처 9회의 설법의 주인공(說主)은 보현과 문수를 필두로 한 비롯한 여러 보살님들입니다. 화엄경 7처9회를 도해한 그림이 바로 조선후기 유행한 화엄탱이고, 이 화엄탱에는 설법하는 설법인의 보살(그림2 선암사 화엄탱 부분, 1780년)과 청중 보살로 가득합니다.

‘설법인의 보살형’ 형식을 취한 노사나불 존상은, 지난회(연재17)에서 언급했듯이 조선후기 괘불탱의 주된 주인공이 될 뿐만 아니라, ‘화엄탱’ 및 ‘팔상탱’에도 필히 등장하는 존상입니다. 삼신탱(법신 비로자나ㆍ보신 노사나ㆍ응신 석가모니의 삼신을 그린 불화)의 ‘노사나불탱’은 물론이겠고요.

팔상탱(석가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불화)의 경우,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에서 어김없이 이 설법인의 보살형 노사나불이 등장을 합니다(그림3 해인사 팔상탱의 녹원전법상 부분). 바로 이 장면은 석가모니가 득도 한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初轉法輪)하는 역사적 순간’을 묘사한 것입니다.

지난회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자비심을 내어 설법을 시작한 이 순간, 석가모니는 더 이상 역사적 존재로서의 한 인물이 아니라 대중의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신적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불교는 개인적 수행과 연마의 ‘자기철학’에서 민중을 구하는 하나의 ‘종교’로 승화하게 됩니다.


이러한 개인 성불을 위한 소승적 목표와 민중구제 및 교화의 대승적 목표를 한꺼번에 지닌 존상을 ‘보신(報身)’이라고 합니다. 보통 보신은 수용신(受用身)으로 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 양자적 의미를 모두 갖춘 존재라고 정의됩니다. 자수용신이란 ‘수행의 결과로서 얻은 불과와 자내증의 법문을 스스로 수용하여 즐기는 부처’, 타수용신이란 ‘그 깨달음의 결과와 법문을 다른 사람에게 수용시켜 교화하여 지도하는 부처’입니다. 이 타수용신의 대표적인 부처님으로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있었던 아미타여래과 약사여래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양자적 존재로서의 보신 노사나불의 의미를 절묘하게 표현해 낸 것이 연재1에서 소개한 일본 십륜사소장 조선전기 ‘오불존도(五佛尊圖)’입니다. 삼신불과 보신삼불(報身三佛)이 교차하는 십자형식의 특이한 구도 가운데에, 설법형 보살형의 보신 노사나불을 위치하도록 배치하여 이 양면적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낸 역작입니다. 즉 이 보신 노사나불 존상 하나에, 삼신의 의미와 세상에서 추존되는 다양한 여래 및 보살를 통합하는 의미가 포괄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설법인의 보살형 노사나불은 고려후기 <범망경> 사경화 등에서부터 보이 시작하는데, 중국 송나라 사경에도 유사한 형식(그림1 송대 <범망경보살계본>, 교토대학부속도서관소장 다니무라 문고)이 보여 그 영향관계를 짐작케 합니다. 물론 이 노사나불 도상은 <범망경>과 함께 중국 및 일본 등지에서도 유행하지만, 고려말 조선전기에서 특히 <원각경>의 주존으로 선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범망경> 또는 <원각경>은 <화엄경>의 축소판 또는 <소화엄경>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근본 사상은 물론 <화엄경>을 지향합니다. <범망경>의 정식 경전명칭은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梵網經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 보살이 지녀야할 계율을 설하고 또 그 보살 정신의 실천으로 중생을 하나도 빠짐없이 범망(인드라의 그물망)으로 건진다는 내용입니다. <원각경>에는, 설법의 주체인 석가세존이 12보살들과의 문답을 통하여, 먼저 원각(圓覺)이라는 대원(大願)에 대한 설명하고 다음으로 중생의 근기에 맞춘 다양한 구체적 수행 방법을 제시합니다.

경전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범망경>을 설하는 주인공은 노사나불이니, <범망경> 사경화 등에 노사나불이 묘사되는 것은 당연하겠습니다만, <원각경>의 설법 주체는 석가세존인데 어째서 <원각경>관련 불화에는 주존이 노사나불로 표현되는 것일까요?

설법하기 시작한 석가세존은 바로 ‘수용신’ 즉 ‘보신’으로서 그 덕호를 보인 것이라는 사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전기 세종 및 세조 시기를 기점으로 회통과 융합의 대명사로서 자리잡게 된 ‘설법인 보살형 노사나불’은, 고려의 귀족불교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조선의 민중불교로 가는 대대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게 됩니다.

 

강소연 박사(홍익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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