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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글쓰기

 

 "법을 설하리" 큰 수레 굴리는 경이적 순간     2006.10.25

 

 

“고생 끝에 겨우겨우 얻은 이것을
어이 또 남들에게 설해야 되랴…”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뒤에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정각(正覺, 깨달음)을 통해 힘겹게 얻게 된 이 진리를 이야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이미 어리석음과 탐욕과 노여움의 격정에 불타고 있어, 자신이 깨달은 이 심심 미묘한 진리를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하거니와 아니면 곡해하거나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석가모니는 고민 끝에 침묵하기로 합니다. 한참 주저하던 그는 깨달은 것을 혼자만 갖고 있기로 합니다.

이때 범천(梵天 우주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는 고대 인도 신 브라흐만)이 나타나, “석가모니 당신마저 침묵하면 이 세상은 희망이 없다”며 그의 설법을 적극 유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범천권청(梵天勸請)’의 순간입니다.

석가모니의 일대기 중,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는 인도 고유의 가장 파워풀한 신이 등장하여 그를 돕는 경향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정각의 순간도 그렇지요. 석가모니가 바야흐로 정각을 이루려 하자, 마왕 파순이 나타나 네가 이룬 것은 정각이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이를 도대체 누가 증명할 수 있느냐”며 그의 신념을 뿌리채 흔듭니다. 이에 석가모니가 손가락을 들어 땅을 가르키자, 지신(地神)이 나타나 그의 정각을 천하에 증명하고 삼천대천세계를 크게 진동시켰다지요.

득도 후 깨달은 것을 ‘설법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는 이 순간에는 인도 고유신 범천이 나타나, 안으로만 침잠하려는 석가에게 눈을 들어 세상을 보라고 합니다. 그의 눈에는 가지각색의 근기(根機, 중생 개개인의 제각기 다른 능력 또는 인성)의 사람들이 들어왔겠지요. 그렇다면 설법(說法)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왜 이리도 중요할까요.

이는 자신만의 영혼 구제에 그치느냐 아니면 이 깨달음을 가지고 대중을 구제하는 방편으로 삼느냐라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안으로 스스로 점수(漸修)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깨달은 것, 그 득도의 지적 희열(法悅)을 혼자만 만끽하는 단계가 ‘소승(小乘)’이라면, 이제 눈을 밖으로 돌려 무명 속에 헤매는 민중을 구하고자 ‘설법’이라는 ‘자비의 방편’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 이는 ‘대승(大乘)’이겠지요. 석가모니 설법에의 결심! 바로 소승에서 대승으로 전환이 일어나는 경이적인 순간인 것입니다.

해탈을 통해 저 피안으로 가버리지 않고 대중 구제를 위해 세상에 남아 그가 깨달은 것을 ‘설법’하는 이 순간은, 그가 ‘보살’로 전이되는 순간입니다. 고려말부터 보이기 시작해 조선시대를 풍미한 노사나불(盧舍那佛)은 바로 이러한 일종의 종교적 비약의 순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노사나불은 ‘설법인(說法印)’의 ‘보살형(菩薩形)’ 존상을 하고 있고, 이 점이 가장 큰 도상학적 특징이라 하겠습니다.(그림1)

두 팔을 양쪽으로 어깨높이에서 벌려 손바닥이 위로 가게 손목을 뒤로 젖히고, 손가락은 엄지와 약지가 살짝 만나게 둥글게 설법인을 이룹니다. 그리고 분명 여래인데도 불구하고 보살처럼 화려하고 높은 보관에 천의와 영락으로 화려하게 장엄을 하였습니다. 당연 여래라면 법의를 걸친 것 이외에는 보관 및 장신구 등 아무런 호사스런 장식이 없어야 겠지요.

어찌보면 여래도 아니고 보살도 아닌, 아니면 여래이기도 하고 보살이기도한 존상. 결국 ‘보살형(菩薩形) 여래(如來)’라는 모순적 명칭을 붙일 수 밖에 없는 존상입니다. 바로 이 여래와 보살의 중간적 존재, 바로 이 ‘대승보살(大乘菩薩)’의 개념 속에, ‘불교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지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엄의 절대 진리는 비로자나(virocana 光明遍照, 세상에 두루 비치는 빛)로 상징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원효와 의상 등의 대승에 의해 화엄사상이 한창 꽃피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 지권인(智拳印)의 여래로 만들어져 그 유구한 전통을 자랑합니다. 이 비로자나는 절대 진리 그 자체로, 각종 경전에 말이나 형상으로 표현 불가능하다고 구구절절 설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비로자나는 법신(法身) 그 자체이므로 이가 형상화될 경우에는 보신(報身) 노사나불의 형태를 취합니다. 표현 불가능한 진리(비로자나)가 표현된 것(노사나), 그러니까 이 양자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 화엄경> '현수보살품'에는 바로 여래와 보살의 근본 의미와 양자의 관계가 아주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모든 번뇌의 파도가 가라앉은 청정한 마음의 고요하고 맑은 상태, 즉 적멸(寂滅)의 상태를 ‘해인삼매(海印三昧)라 하고, 여기에 만물이 있는 모습 그대로 투영되어 작용하는 상태를 ‘화엄삼매(華嚴三昧)’라고 한다.

화엄학의 대가 카마타 시게오씨는 ‘법신의 묘한 과보를 장엄하는 것을 화엄삼매라고 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화엄삼매를 얻은 힘으로 비로서 자유자재롭게 중생을 교화하고 설법하고 무변무한한 모습으로 ‘작용(作用)’할 수 있다는 겁니다. 체(體)와 용(用)의 관계, 바로 해임삼매(體)가 법신 비로자나라면 화엄삼매(用)는 보신 노사나가 아닌가요. 그 작용 자체가 바로 법신(眞理)을 ‘장엄(莊嚴)’하는 행위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화엄경(華嚴經)>이라는 경전이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잡힐 것만도 같습니다.

중생의 원하는 것에 따라 무변하게 작용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저희 앞에 계신 수많은 부처와 보살, 그리고 호법신들이겠지요. 법신의 작용으로서의 보신 노사나불. 그러니 노사나불 속에는 세상에서 추존되는 모든 ‘여래 및 보살’를 통합하는 함축적 의미가 들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장엄이라고 하면 우리들은 보통 시각적 장식을 떠올리겠지만, <화엄경> '십지품'에서는 ‘보살행(菩薩行)으로 삼계를 장엄’하는 실천적 장엄을 강조합니다. 보살행 중에서도 가르침을 통한 중생 인도, 다양한 능력과 수준의 대중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걸림이 없는 자유자재로운 설법의 변재가 요구되므로, ‘보살은 법사(法師)’라고 칭해집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연유로 노사나불이 여래이면서도 보살의 형식을 취해 극히 화려한 장엄을 하고 또 설법인의 수인을 결하고 있는지, 그 가장 근본적인 종교적 의미를 알 수 있겠지요.

 

 

 
 
강소연(미술사학자ㆍ홍익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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