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이 꾸는 꿈
참으로 긴 꿈이었습니다.
내가 미술사학자가 되어
전국의 불화를 조사하며
사찰을 떠돌았습니다.
참으로 긴 꿈이었습니다.
내가 사진작가가 되어
주야로 고속도로 질주하며
풍경과 대상 속에 파묻혔습니다.
참으로 긴 꿈이었습니다.
내가 기자가 되어
원고마감 나날 속에
자판과 문자 사이 전쟁하였습니다.
참으로 긴 꿈이었습니다.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 밥 먹이느라
가스불 앞 마냥 비지땀 흘렸습니다.
참으로 긴 꿈이었습니다.
내가 아빠가 되어
가족 부양을 위해
불철주야 긴장 속 뛰었습니다.
참으로 긴 꿈이었습니다.
내가 스님이 되어
새벽 저녁으로
예불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길고도 긴, 반평생의 꿈이었습니다.
꿈에 떨어진 그 날부터 지금까지 그 꿈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네요.
정말 꿈에도 그것이 꿈인 줄 몰랐네요.
‘이것은 무엇인가’ 를 꺼내는 순간 산산조각 나버린 꿈. 깨고 보니 그 길었던 꿈은 실상 1초 안에 일어난 듯, 그리고 '꿈'과 '꿈이 아닌 것'이 하나였습니다. 불이不二. 그렇다면 생生과 사死도 불이. 번뇌와 깨달음도 불이. 꿈을 깨고 보니 거기엔 …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 시간은 꿈 꿀 때만 존재하는구나. 여태껏 꿈 속에서 마냥 헛소리하고 발길질하고 했구나!
꿈은 다시 꿈을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