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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37) <제석천도>(상) (日 세이타쿠인 소장)

by 강소연 posted Mar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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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인간세상 굽어보는 '하늘의 제왕'    2007.11.28

 

조선초기 추정, 비단에 채색, 97.5x54.0cm, 일본 교토 세이타쿠인(聖澤院) 소장

 

일본 교토국립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한국불화 중에 참으로 보기 드문 희귀한 존상의 불화가 한 점 있다.(그림1) 작품 속의 존상은 높은 보관을 쓰고 여러 겹의 옷을 현란하게 겹쳐 입고 있다. 아름다운 보관 한가운데에는 세 개 구슬이 삼각 모양을 이룬 마니보주가 불꽃을 일으키며 빛난다. 손에든 지물과 앉은 자세, 옷 장식 등은 기존에 흔히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모양새이다. 한 눈에 어떤 부처님인지 보살님인지 좀처럼 가늠키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품의 탁월한 아름다움과 우수성이다. 화려한 장식성과 더불어 영롱한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깃들어 있다.

이 작품은 본래 교토에 있는 사찰 세이타쿠인(聖澤院) 소장의 작품으로, 그 뛰어난 작품성 으로 일본 메이지시대 때에 한 때 일본 국보로 지정된 적이 있었다. 국보로 지정되었을 당시에 이 작품은 중국 원나라 것으로, 작품 이름은 마리지천(摩利支天)으로 판명되었었다. 또「국화」라는 일본 저명 미술사학지에는 카마쿠라시대 후기의 일본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논고가 국보 지정 이후 연달아 실린바 있다.

해외에서 발견되는 우리나라 작품들은 특히 그 작품성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제 주소를 못 찾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우수한 작품이라 하면 무조건 중국 작품이거나 다음으로 일본 작품이라는 문화적 패권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문화적 우월감으로 인한 사대주의가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팽배하여, 중국 것과 일본 것은 단지 인상 판단(학자들의 감식안에만 의존하는 유물 판별 방법)만으로도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반면, 한국 것을 한국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참으로 여러 가지 증거를 대고 구구절절 논증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작품성이 탁월한 걸작일 경우에는, 외국 학자들의 ‘어째서 이것이 한국 것이냐’라는 반신반의 질문 공세를 피할 수 없다.

그러던 것이 일본에서 점차적으로 한국 고려불화의 비견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우수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해외 타지의 여기저기에서 다른 나라의 이름을 쓰고 있던 우리 작품들이 제 주소를 찾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떠한 근거에서 한국 불화인가. 또 작품 속에 보이는 특이한 도상학적 근거들은 과연 이 존상이 누구라는 것을 말해 주는가. 우선 자세히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여러 겹으로 겹쳐 입어 자칫 난해하게도 보이는 존상의 옷이다. 겉에 걸친 천의(天衣)는 어깨 자락이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밖으로 뻗어 있고, 또 그 밑으로는 새 깃털인지 부드러운 풀인 층층이 그 가닥이 좌우로 뻗었다.

옷의 품이 얼마나 큰지 손이 나온 소매 자락을 보면 그 통이 무릎을 지나 발아래 까지 흘러 떨어지고 있다. 붉은 치마 아랫단 밑으로는 부채 살 접듯 접어 한층 볼륨감을 낸 안 감 치마가 프릴 장식처럼 부풀어 나왔고 그 밑으로 발이 나온 부분은 그 자락이 들려 끝단이 반전되어 있다. 그외 붉은 리본 매듭 자락, 영락 장식, 보석 장신구 등으로 치장을 더했다.

그런데 옷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양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지물 역시 낯설다. 둥근 타원형의 부채로 좀처럼 보지 못했던 물건이다. 부채는 공작 깃털과 부드러운 하얀 솜털로 장식되었고 그 부채 안에는 무언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붉은 해와 흰 달이 눈에 띄는데 이 해와 달은 산 꼭대기에 있는 궁전을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인데, 무언가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풍긴다.

이상의 특징이외에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이채로운 것은 존상의 자세이다. 존상은 정면을 응시하며 왕좌에 걸터앉아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연화대좌에 앉거나 혹은 서있는 부처님 또는 보살님의 자세가 아니라, 마치 왕이 왕좌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정면 의좌상(依座像)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왕좌 역시 보통 호사스러운 것이 아니다. 등받이 양쪽으로는 금 용머리 장식 돌출되어 나왔다.(그림3) 벌어진 용의 입에는 붉은 구슬 장식이 줄줄이 엮여 있다. 의자 팔걸이 부분에는 금 봉황머리 장식을 했다. 보통 왕실용 의좌에는 용이나 봉황, 둘 중 하나만 장식되는데 이 의자에는 용과 봉황이 모두 있다. 이렇게 과도하다시피한 화려한 장식 탓인지 이 존상은 언뜻 보기에 매우 여성적으로 보이나, 다가가 보면 그 원만한 얼굴은 위엄스럽고도 근엄하기 짝이 없다.(그림2)

이 작품이 한국 작품이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학자들 사이에 소문이 이미 나 있었으나, 이 존상이 고려시대의 ‘제석천’이라고 구체적으로 논증된 것은 극히 최근일이고 이는 한 일본 학자에 의해 발표되었다.

제석천은 불교를 수호하는 호법신 중에 가장 지위가 높은 천신(天神) 중 하나인데, 이 제석천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 꼭대기에 선견성(善見城)이라는 궁전에 살고 있다. 이 제석천이 거주하는 수미산 위의 하늘 공간을 도리천(또는 33천)이라 한다. 그리고 아래로는 사천왕이 거주하는 사천왕천이 있다. 사천왕은 아래의 인간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선행과 악행을 관찰하여, 위의 제석천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제석천은 도리천에서 지상 세계를 굽어보며 사람들의 선악을 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도리천은 인간세상 위에 있는 하늘이고, 여기를 다스리는 제석천은 하늘님인 것이다. 그래서 제석천은 하늘의 제왕 또는 주인이라는 뜻으로 천제(天帝), 천주(天主), 혹은 천제석(天帝釋)으로도 불린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단군 할아버지인 환인을 석제환인이라 하여 하늘의 주인인 제석천과 동일시하여 섬기기도 하였다. 이 제석천의 존재를 이해하면 우리의 전통적 우주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연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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