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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신문】 불화 속의 명장면(33) 고려불화 <관세음보살도> (日 기부현 동광사 소장)

by 강소연 posted Mar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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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비심으로 중생들, 극락정토 인도    2007.9.19

 

 

아득한 명상(冥想)의 작은 배는 가이없이 출렁거리는 달빛의 물결에 표류되어, 멀고 먼 별나라를 넘고 또 넘어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이르렀습니다.

이 나라에는 어린 아기의 미소와 봄 아침과 바다 소리가 합하여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은 옥새의 귀한 줄도 모르고, 황금을 밟고 다니고, 미인의 청춘을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이 나라 사람은 웃음을 좋아하고, 푸른 하늘을 좋아합니다.

 

명상의 배를 이 나라의 궁전에 매었더니, 이 나라 사람들은 나의 손을 잡고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을 꾸미려고 돌아왔습니다.

달빛의 물결은 흰 구슬을 머리에 이고, 춤추는 어린 풀의 장단을 맞추어 우쭐거립니다. <명상(冥想), 만해 한용운>

 

누구나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견디기 힘든 극심한 고통에 처하면, 천국을 꿈꾸게 된다. 그 천국이 내 어릴적 꽃나무 만발한 정원이건, 모든 것을 어루만져 주시던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이건, 순결한 첫 눈 같은 여자 친구의 모습이건, 이 상상력의 힘으로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 나아간다. 천국은 눈감으면 그렇게 상상 속에서 한줄기 환한 빛으로 미소 짓고 있다.

만해(萬海) 한용운은 「명상」이라는 시에서, 그가 꿈꾸던 천국과 그가 어울리고 싶었던 천진난만한 사람들을, 그 특유의 맑고도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풀어내고 있다. ‘명상의 작은 배’를 타고 출렁이는 달빛 물결을 넘어 황금의 땅 극락에 가 닿았으나,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님’을 위해, ‘님의 가슴에 천국을 꾸미려고’ 다시 돌아왔다.

여기에서 말하는 ‘님’은 읽는 독자의 마음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지겠지만, 만해에게 있어서는 ‘중생’일 것이다. 만해의 평생에 걸친 화두는 ‘중생 구제’였다. 이 시에는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라는 보살행(菩薩行)의 참의미가, 애잔한 어휘로 잘 묘사되어 있다. 만해가 일생을 걸고 주력했던 것은 불교의 대중화 혹은 민중화였는데, 그는 ‘산간(山間)에서 길거리(街頭)로! 승려(僧侶)에서 대중(大衆)으로!’라고, 그의 저술「불교유신론」에서 부르짖고 있다. 물론 불교의 대중화란 ‘보살행’이라는 실천적 행위로 가능하고, 또 보살행은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이기도 하다.

‘자신을 위한 수행과 함께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自利利他)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보살’의 기본 개념이다. 성불(成佛)할 수 있으나, 이를 미루어 두고 당장 중생의 아픔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 보살이다. 지혜, 행원, 희사 등을 상징하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등 많은 보살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보살의 희생정신을 대표하는 보살 중의 보살로는 ‘관세음보살’을 꼽을 수 있겠다.

옛 우리 조상들이 친견하기를 염원했던 관세음보살의 환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본 교토국립박물관에는 일본 동광사에 소장되어 있던 고려시대 <관세음보살도>가 위탁되어 관리되고 있다.(그림1) 고려시대의 관음보살은, 대개 아미타불의 좌측에 서있는 협시로 <아미타삼존불도>에서 찾아볼 수 있거나, 또는 선재동자가 보타라카산 정상에서 만나게 되는 관음보살을 묘사한 <수월관음도>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본 작품은 관세음보살이 정면을 하고 서있는 모습의 독립상으로, 관세음보살이 협시로서의 의미에서 벗어나 대중적 유행에 호응하여, 단독 신앙으로 숭배되어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흰 옷을 입고 있는 관음보살은 푸른 연꽃을 밟고 서서, 왼 손으로 오른팔 손목을 잡고 있다. 앞으로 다소곳이 모아지는 보살의 팔 위로는 투명한 비단 베일이 층층이 결을 내며 흘러 내려온다.(그림2) 극세사로 짜여진 투명 사라는 관음보살의 높은 보관을 덮고 관음보살의 몸 전체를 감싸고 있다. 사라의 육각형 바탕문양 위로는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인듯 또는 날아오르는 봉황인듯, 금 안료로 그려진 구름과 봉황 문양이 한 데 어우러져 그 섬세함과 유려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관음보살의 화려하고도 높은 보관에는 붉은 대의(大衣)를 두른 화불(化佛)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아미타 부처님이다. (그림3)

관음보살이 아미타불을 정수리에 모시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관음보살의 정수리에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이유는, 관음보살의 ‘자비’라는 방편으로 중생을 아미타불이 계신 곳, 즉 ‘극락’으로 인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음은 아미타불의 대리인의 자격으로, 마치 메신저(使者)와 같이 극락과 속세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자비심이라는 따듯한 손길로 우리를 이끌어 극락정토로 안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동해 해변에 낙산사를 짓고 최초의 관음도량(또는 백화도량白華道場)을 연 의상법사는 그의 <백화도량발원문>에서 ‘관세음보살이 이마 위에 아미타여래를 이고 계심과 같이, 나도 또한 관음대성을 이마 위에 이고, 관세음보살을 본사(本師)로 삼겠다’고 하며, ‘널리 법계 중생과 같이 일체 중생이 대비주(大悲呪)와 보살의 명호를 염송하여 모두 원통 삼매의 바다에 들어가길 원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의상은 중생을 정토로 인도하고자 관음의 성지를 동해 바닷가에 열었던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은 누구에게 익숙한 염불이라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둘이 아니고 하나(不二)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미타와 관음의 이러한 동전의 양면과 같은 현상을 가리켜 이신동체(二身同體)라고 일컫기도 한다. 중생을 자비로 보듬는 관음신앙을 자연스레 극락신앙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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