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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연꽃'에서 탄생하는 무수한 부처     2007.10.24

 

 

우리는 매일 새벽, 수억년 전부터 우주를 비추었을 그 태초의 태양빛을 맞는다. 세상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면서 흐르는 강물, 푸르른 들판, 싱그러운 나뭇잎사귀는 생기가 돌기 시작하고 지상 모든 사람들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만물을 소생시키는 광명을 신격화한 것이 비로자나이다. 비로자나(Virocana)는 광명편조(光明遍照)란 뜻으로 세상에 두루 비치는 무량한 빛을 의미한다.

태양이 발산하는 강렬한 에네르기는 태초에 문명이 등장하면서부터, 즉 고대이집트의 라(Ra), 고대 인도의 수리야, 그리스의 아폴론 등의 태양신으로 신격화되어 숭배되어져왔다. 대승 불교에서는 우주 만물을 관통하는 이러한 진리를 법신 비로자나로 표현한다. 태양빛이 세상의 천차만별한 만물에 차별없이 가닿아 이들을 생장시키는 힘을, 각양각색의 근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한한 혜택을 끊임없이 주는 비로자나의 가피력으로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로자나의 세계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로 일컬어진다. 과연 진리와 그것이 구현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화엄경에 나타난 연화장세계의 광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티끌 수만큼 많은 무수한 풍륜(風輪)이 층층이 떠받치고 있는 위에는 망망한 향수의 바다(香水海)가 출렁인다. 그 바다 가운데 한 송이의 커다란 연꽃(種種光明蘂香幢)이 피어있는데 그 속에 화장장엄세계해(華藏莊嚴世界海), 즉 연화장세계가 존재한다.

 

신비스러운 검푸른 일렁임 위로 투명하도록 맑고 청정한 연꽃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피어 오른다. 이 거대한 연꽃 속에서는 연화장세계라는 별천지가 펼쳐진다. 연꽃을 피어올린 광활한 향수의 바다는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연지(蓮池) 또는 연못이 되는 것이다. 즉,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고 이 연못에서 대연화가 피어난 것이다. 물-연못-연꽃은 모두 연속선상에 있는 개념으로, 결국 물과 연못(또는 바다)과 연꽃은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나타내게 된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물은 모든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의 물’인 것이다. 태초에 물이 생겨나니 생명이 잉태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연꽃은 만물의 창조주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이 연꽃에서는 연화장세계가 다시 창조되어 나오는 것이다. 구미권 저명 학자들은 이를 코스믹 로터스(Cosmic Lotus), ‘우주창조의 연꽃’이라고 이름붙이기도 했는데, 이 ‘연화장’에서 다시 우주에 존재하는 수억 수천 개의 세계가 태어나는 것이다. 연화장이란 산스크리트어 파드마가르바(padmagarbha)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모태, 자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로 생명의 물이라는 핵심 개념이 진리의 법(法)에 비유되는데, 여기에서 법의 구름(法雲)ㆍ법의 비(法雨)ㆍ법의 바다(法海) 등 궁극적으로 물을 상징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파생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이는 다산과 풍요, 다함에 없는 은혜와 자비로 그 뜻을 확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 바다의 밑을 바치고 있다는 바람의 수레바퀴, 풍륜은 무엇일까. 사전상의 의미로는 대지의 밑에 존재하는 공기층이라고 한다. 전 세계를 바치는 네 개의 큰 수레바퀴가 존재하는데, 그 최하가 허공륜(虛空輪)-그 위가 풍륜(風輪)-그 위가 수륜(水輪)-그 위가 금륜(金輪)이라고 한다. 풍륜을 따서 이름 지은 ‘풍륜삼매’란, 지혜가 허공 속 바람처럼 거침이 없어 만물을 뒤흔들고 일체 번뇌를 부수어버리는 경지를 일컫는다 한다. 이처럼 풍륜 밑에 허공륜이 있다는 사실 등에 근거해 보자면, 바람의 속성처럼 일체 만물의 속성, 말하자면 일체 만물의 법성(法性)은 ‘공(空)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차크라(Chakra)를 의미하는 수레바퀴(輪)의 상징성을 상기하면, 소용돌이처럼 돌고 도는 에너지의 중심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음과 양이 맞물려 돌아가는 태초의 혼돈 상태, 태극이라고 불리는 천지개벽 이전 기체의 소용돌이가 연상되기도 한다.

연화장세계의 연원은 기원전 수세기경의 고대인도 신화인 마하바라타의 천지개벽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억겁의 세월 전에, 일체 모든 것이 공(空)인 상태일 때, 중생의 복덕인연의 힘으로 인해 시방에서 바람이 일고, 이 계속되는 바람이 커다란 물결을 일으켰다. 물 위에는 천개의 머리와 이천 개의 손과 발을 가진 존재가 있는데 이름하여 비슈누(힌두교의 태양신)라 한다. 이 존재의 배꼽으로 부터는 천개의 꽃잎이 달린 황금색 연꽃이 피어나는데, 그 빛은 매우 크고 눈부셔서 만일 동안을 족히 비추었다. 이 연꽃 가운데에서 결가부좌한 존재가 나오더니 그는 다시 무량한 광명을 발산한다. 이름하여 범천(브라만)이라 한다. 그 심중으로부터 여덟 사람이 태어나고, 이 여덟 사람으로부터 천지 인간들이 모두 태어난다’라고 <잡비유경>에는 이 신화를 말하고 있다.

물론 불교에서 독자적으로 다시 탄생하게 된 광대무변한 연화장세계와는 스케일에서 좀 다르다고 하겠다. 세상의 티끌 수만큼 많은 향수해, 수억 겁 년의 공덕과 한량없는 광명, 낱낱 털구멍마다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억만 세계 등 끊임없이 나열되는 어마어마한 단위의 서사적 표현에는 미치지 않는 내용이지만, <풍륜→물→연꽃→천지만물의 생성>이라는 기본 구조는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연화장세계를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가장 시대라 올라가는 작품은 고려후기의 화엄경 판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해인사본<80화엄경목판본>의 변상도를 바탕으로 고려인들이 그 모습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에 서두에 그려진 변상도에는 지권인의 수인을 한 비로자나불이 오른 쪽에 앉아 있고(그림1) 그 왼쪽으로는 비로자나불의 원력으로 생겨난 연화장세계가 그려져 있다. 향수해 위에 둥근 바퀴와 같은 간략한 형태의 연꽃이 묘사되어 있고 거기에서 무수한 작은 부처들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그림2). 장면 옆의 문구에는 ‘中央香水海所持二十重廣大世界(중앙 향수해가 이십 중층의 광대한 세계를 품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연화장세계를 수많은 형용사들의 나열로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화장세계품의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찾아볼 수 있다.

화장 장엄 세계에 있는 무수한 티끌/그 낱낱 티끌 가운데 법계를 보니/광명 속에 부처님이 구름 모이듯 하네/이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부처님들 세계/ 넓고 큰 서원의 구름이 법계에 가득하니/한량없는 겁마다 중생을 교화하네/보현의 지혜와 행원이 다 성취되니/무수히 많은 장엄이 여기에서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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